기질이 다르면 스트레스도 다르다

기질이 다르면 스트레스도 다르다

아이하고 나하고

뇌2003년11월호
2010년 12월 08일 (수)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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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눈송이들, 하늘에서 세상을 향에 내려오는 이 눈송이의 결정체를 혹시 본 적 있는지.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수많은 눈송이들이 모두 제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결정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믿겠는가? 인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들도 모두 저마다의 특별한 재능과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그 독특함이 아이의 장점으로 승화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는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기질이 다른 아이들은 상황에 대한 반응도 다르고 당연히 스트레스 기제도 다르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민정이는 ‘까다로운’ 아기였다. 태어나자마자 오랜 시간을 울어댔으며, 잘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기질이 예민하여 깜짝깜짝 잘 놀라곤 했다. 그러나 민정이의 엄마는 당시 남편과 시부모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라 민정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주지 못했다. 아이가 배고파 울어도 우유를 주지 않았고, 기저귀가 젖어도 제 때 갈아주지 않아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였으며, 아이가 밤에 울어도 ‘울다 지치면 잠들겠지’ 생각하고 내버려둘 뿐 안아주거나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 되서야 아이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부모가 소아정신과에 찾아갔고, 진단결과 ‘유사자폐증’으로 판정되었다.

재민이는 이것저것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 아이였다. 부모가 ‘안돼’라고 해도 끝까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해낼 만큼 고집도 셌다. 하루는 재민이가 저녁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선반 위에 올려진 자동차를 꺼내달라고 조르자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는 “조용히 하지 못해!”라고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재민이는 조용해졌고, 아버지는 뉴스를 다 보고 난 후 자동차를 꺼내주었다. 그 이후부터 재민이는 말을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들의 세 가지 기질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부모와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때문에 아이가 정신질환에 걸리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맞추어 부모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기질을 타고난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접근해야만 아이 본래의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인간기질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토마스와 체스Thomas & Chess는 아이들의 기질을 ‘쉬운(easy)아이’, ‘까다로운(difficult)아이’, ‘느린(slow to warm up)아이’로 나누었다.

일반적으로 ‘쉬운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기 수월하다. 제때 먹고 자며, 방긋방긋 잘 웃고, 낯선 사람이나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느린 아이’는 쉬운 아이보다는 까다롭지만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주면 서서히 적응하며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한다. 그러나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은 먹는 것과 자는 것이 불규칙하며, 정서적인 변화도 빈번하고 자기 특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고집을 부린다. 또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부모에 대한 요구가 많다. 위에 예시된 민정이와 재민이는 이런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난 경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문제행동을 나타내는 아이들은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났을 가능성이 크다. ‘쉬운 아이’나 ‘느린 아이’들은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이 다소 부적절하고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더라도 그럭저럭 잘 적응한다. 그러나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이의 부모는 쉬운 기질의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두 세 배로 힘이 들 수 있다. 아기 때는 잘 울고, 잘 보채며, 잠도 잘 안자고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며 예민하게 반응한다. 좀 자라면 편식하고 낮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낮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난 아이를 쉬운 기질로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아이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부모의 여유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까다로운 기질을 수용하여 가능한 한 아이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아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물론 매번 아이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와 부딪히기 마련이지만 아이의 기질에 초점을 맞추고, 부모가 좀 더 인내하고 수용하는 태도로 지켜봐 준다면 점차 해결될 수 있다.

부모가 급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또는 어떤 이유로 아이의 욕구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아이에게도 스트레스지만 부모의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에게도 역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아이의 기질과 부모의 양육태도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전문용어로 조화의 적합성(goodness of fit)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는 두뇌 손상을 가져온다

스트레스가 두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증명하였다. 일례로, 스나이더Snyder는 쥐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두뇌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인 엔케팔린enkephalin이 과잉행동성을 증가시키고, 기억을 감퇴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부분의 뇌세포가 더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이런 결과는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리라 생각된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아드레날린 분비가 증가되어 해마에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런 현상은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현저하게 나타났다.

어떤 이유로든 아이와 부모 사이에 기질이 충돌하면 아이는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근 정신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 아동의 누적된 일상의 스트레스가 여러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강조되면서 아이들의 일상적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먼저 스트레스의 기제를 간단히 살펴보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선 놀라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교감신경계가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현상을 겪는다. 이어 다음 단계에서는 인체가 스트레스에 적응하려 하거나 저항하게 되는데 이 때 뇌에서 부신피질호르몬 등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몸이 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한다. 이렇게 자극과 변화에 몸을 적응시키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스트레스 자극이 계속되거나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면, 내부 에너지가 고갈되고 심리적으로 자포자기하거나 우울해지는 스트레스 반응의 마지막 단계, 즉 고갈단계에 이른다. 이 상태에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괜히 짜증을 낸다. 뇌가 각성이 되어서 잠도 잘 못자고 어지럼증이 생기며 위장운동이 저하되어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 머리 주변 근육이 긴장되어 머리 뒤가 당기듯 아픈 두통이 생긴다.

인간의 뇌는 지속되는 스트레스로 지치면 전두엽의 이성적인 기능과 감정을 다스리는 변연계의 기능이 약화되고 오직 생존을 위한 처리에만 급급하게 된다. 자연히 아이는 과잉행동이나 파괴적인 행동을 하며, 과제에 주의집중을 못하고 학습에도 장애가 생긴다.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말은 하지만 의사소통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부모의 일방적인 기준은 금물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부모와 아이의 기질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 부모의 태도는 아이의 일상생활에서 두뇌의 발달을 저해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어떤 행동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어떤 행동이 아이의 본래 재능을 돋보이도록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성장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유전과 환경으로 나뉜다. 출생시에 이미 타고나는 유전적 부분은 변화되기 힘든 반면, 길러지는 부분은 아동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또는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길러질 수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아이의 타고난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가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일 터이다. 다시 말하면, 아동교육은 타고난 기질적 바탕이 존중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기질적인 부분을 존중하고 수용하기보다는 부모가 먼저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이 기준에 이르도록 아이를 밀어붙이기 쉽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는 부모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열등감을 갖게 된다. 또 부모와 사회에 대한 불신감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더듬고, 공격적이고 산만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심한 경우 습관적으로 손톱이나 입술을 물어뜯으며, 선택적 함묵증을 보이거나, 야뇨증 등 여러 가지 병리적인 문제행동을 보이게 된다.

내 아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무한경쟁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의 아이들은 성장과 성취에 대한 심한 압력 속에서 성장한다. 학교교육뿐 아니라 피아노, 미술, 속셈, 태권도 등 각종 학원을 전전하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도록 밀어붙인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빠른 시간에 더 높은 수준까지 도달하도록 부모가 돕는 최선의 방법은 아이를 무작정 밀어붙이는 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는 우선 아이에 대한 특성과 성격을 잘 파악하고 그들의 개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어차피 아이에게는 어른들이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 많으므로, 어른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부모의 수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실제로 모든 아이들은 각기, 너무나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형이나 부모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되리라 기대하는데, 그것은 아이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내 아이만이 가지고 태어난 독특함을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부모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이며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 아이만의 독특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아이가 어떤 때, 어떤 것에 반응하고 스트레스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극복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저절로 알 수 있다.

글│오미경 mkoh82@hanmail.net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이화여대에서 아동발달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뇌의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심리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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