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도 좋아지고 병원도 이렇게나 많아졌는데 왜 병의 숫자는 줄지 않고 도리어 늘어가기만 할까?
현대 의료법으로는 병을 완치할 수 없다. 병원은 사람들의 병이 온전히 낫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 병원도 장사기 때문이다."
도발적인 질문에 이은 절망적인 답변이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아니다, 있다. 그가 말하는 희망은 바로 조선 시대 명의(名醫) 허준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고전평론가로 유명한 저자 고미숙 씨가 지난 6월 23일 '2012 서울국제도서전-인문학 아카데미'에 초대되었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발간된 이후 스테디셀러에 오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주제로 <동의보감>의 관점으로 건강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직설적이고 명쾌했다.
그녀가 25권에 달하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펼쳐 들고서 한 자 한 자 꼭꼭 씹어 읽으며 내린 결론은 ‘절대로 의사나 병원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양의학으로 대표되는 현대 의학은 병이 드러났을 때 치료한다. 사람은 항상 병을 갖고 살지만 드러나지 않을 뿐인데 현대 의학은 몸이 아파져야만 관심을 갖는 제한적 의료법이라는 것. 하지만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우리에게는 <동의보감>이 있다. <동의보감>은 현대 의학이 말하는 ‘위생’이 아니라 ‘양생’을 목적으로 하는 의학서다. 비교우위가 아니라 매번 다른 리듬과 강도와 밀도의 순환만이 존재하는 생명이 양생의 기준이다."
양생(養生)은 목숨을 아끼고 생명을 유지, 존속하기 위한 노력을 뜻한다. <동의보감>은 이처럼 단순히 육체적인 몸의 건강을 넘어서 인간의 정(情)∙기(氣)∙신(神)이 모두 온전해지는 상태를 지향하는 의학서이다.
그는 여기서 <동의보감>이 어떻게 몸의 건강을 넘어 우주와 삶의 비전까지 깨우치게 하는 책인지를 설명했다. 바로 ‘통(通)하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통즉불통(通卽不痛)이요, 통즉불통(痛卽不通)이다’라고 한다. 즉, 통하면 안 아프고 안 통하면 아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소통’이 대세다. 그런데 남과의 소통에 신경 쓰기 전에 먼저 내 머리와 가슴이 통하는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몸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는지를 보면 된다. 종교에서 말하는 ‘마음을 오롯이 하는 것’ 집중력의 다른 표현이다."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은 대개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 몸은 회사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여름 휴가지에 가 있다. 이러니 내 안에서도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고 했다. 생각하는 대로 뜻을 펴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쌓여 간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통할 수 있을까. 그녀가 제시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가족을 넘어서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현대인을 위한 지상명령이다. 단,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고 볼멘소리하지 마라. 그것 자체가 일단 오장육부가 건강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 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는 자긍심과 함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동의보감>은 ‘나를 완벽하게 인정할 때 나의 생명 역시 완벽해진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통할 때 생명이 발동한다."
서구 현대 의학계에서는 최근 들어 부쩍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 심신의학, 대체의학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길지 않은 그의 강연은 이런 현대 의학의 변화에 대해 <동의보감>의 역할을 강조하며 마무리하였다.
"심신의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동양의학을 벗어날 수 없다. 동양의학, <동의보감>은 그 자체가 사람의 몸이고 마음이고 또 우주이다.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의학을 넘어선 철학적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본다."
글. 강천금 기자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