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의 옛 이름은 무엇인가?

단군문화기획 87편 대구의 진산, 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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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해돋이를 이곳에서 맞이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남의 명산, 팔공산(八公山, 1,193m)이다. 대구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지점에서 솟았는데, 대구의 진산(鎭山)으로도 불린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주신다’라는 갓바위가 팔공산의 동쪽 끝 관봉(冠峯) 정상에 있다. 탐방객만 연간 2백만 명에 달한다. 물론 탐방객 1위는 북한산(865만 명)이다. 그러나 단위 면적당 탐방객 수로는 팔공산 갓바위가 최고라는 것. 이만한 기도처이자 영산(靈山)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천년고찰을 자랑하는 동화사를 비롯해서 은해사, 파계사 등이 있어 불교의 성지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떠한 산(山)이었을까?  

▲ 팔공산 동화사 전경(사진=대구시)

고려의 개국공신 8명 vs 중국의 비수전투 격전지

옛날에는 곰뫼, 곰산, 꿩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후 문헌에서 공산(公山)으로 등장하는데, 단군사화에 나오는 곰 토템처럼 곰산이 변해 공산이 됐으리라는 추론이 나온다. 꿩산은 신라 경덕왕 때 '해안현'으로 개칭되기 전의 대구 공산면 및 동촌 일대 행정구역 명칭이 치수화(雉首火)였던 것에서 찾는다. 치(雉)는 꿩이고, 수화(首火)는 이두식 표기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공산은 통일신라 이후 부악(父岳)으로 바뀐다. 이러한 배경은 신라인들이 나라를 지키는 호국신들이 거하는 산인 오악(五岳) 중의 하나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오악은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태백산, 중앙의 부악 등을 말한다. 이 부악은 고려의 왕건과 견훤 이야기를 뿌리로 팔공산이 된다.

두산백과사전은 “고려를 세운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인 곳”이라며 “원래 산의 명칭은 공산이라고 불렀는데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이라고 불렀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영권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왕건의 심복 여덟 장수가 팔공산에서 순절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설”이라며 “공산 전투에서 왕건과 함께 전투하다 순절한 장수로는 신숭겸과 김락 장수 두 명”이라고 반박했다.

전 교수는 팔공산의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중국의 지명을 빌려 쓴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는 중국의 지명을 차용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대부의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이 강했던 조선시대에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383년 전진(前秦)과 동진(東晋) 간에 벌어진 비수전투의 격전지에는 팔공산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당시 비수전투가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공산전투만큼이나 치열했던 것에서 차용한 것이라 판단된다.”

이러한 점에서 팔공산이 아니라 공산이라는 원명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지난해 10월 3일 대구 팔공산 비로봉 천제단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식(사진=대구 국학원)

불교 이전의 신(神)

앞서 신라인들이 5곳의 산 중에서 팔공산을 중심으로 택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신성하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신라인들은 팔공산에서 국가적으로 큰 제사를 지냈다. 물론 불교의 신이 아니라 우리의 산신(山神)이다.

산신의 기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에 닿아 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보면 단군은 죽지 않고 아사달 산신이 됐다고 전하기 때문. 이를 기리는 제사는 제천문화라고 하여 고조선 이래 국가적으로 다양하게 계승됐다.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통문화는 인도의 불교가 들어오면서 주인의 자리를 내주게 된다.

정재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산신을 모시던 토속신앙의 근거지인 팔공산은 부처님을 모시는 불교의 성지로 변모한다”라며 “하늘을 숭배하고 산을 숭배하던 민족의 심성이 어려 있던 팔공산의 관봉 정상에 우리의 갓바위 부처님이 모셔진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팔공산 제천의식이 현대에 부활한 점이다. 지난 2003년 팔공산 비로봉 정상에서 발견한 제천단이 계기가 됐다. 문경현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곳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까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렸던 곳”이라고 말했다. 이후 오늘날까지 대구국학원(원장 이미경)을 중심으로 매년 개천절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개천절 기념식에서 이미경 국학원장은 고천문을 통해 “국조 단군이시여!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를 염원해 주시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바라시는 님의 뜻을 우리가 이루겠다”라고 말했다.

올해도 기복(祈福)을 위해 팔공산을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신라의 김유신은 15살에 화랑이 되고 17살에 중악(팔공산) 석굴를 찾는다. 고구려와 백제, 말갈의 침략을 보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에 있다.

어쩌면 김유신이나 이미경 원장처럼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기도가 팔공산의 주신(主神)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까?

■ 참고문헌

매일신문사 특별취재팀, <(팔공산 2005년의 기록) 팔공산하八公山河>, 매일신문사 2006년
전영권, <대구팔공산의 가치와 활용방안> 한국지형학회지 제19권 제2호 한국지형학회 2012년
정재서, <살아있는 신화, 갓바위 부처님>, 책미래 2014년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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