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는 맞수 그렐린과 렙틴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는 맞수 그렐린과 렙틴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힘, 호르몬 시리즈 11탄

브레인 12호
2012년 10월 04일 (목)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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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어나는 뱃살을 걱정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신의 의지박약을 탓하곤 한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아 먹고, 부르면 그만 먹는 간단한 일도 의지가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호르몬들의 경쟁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몸의 에너지 균형을 좌우하는 중요한 최강의 맞수 호르몬이자 비만 해결의 단서인 그렐린Ghrelin과 렙틴Leptin에 대해 알아보자.


뇌하수체 목장의 결투

수백만 년 전 인간의 뇌와 대사의 메커니즘이 자리 잡은 이래 오늘날처럼 두 호르몬의 결투가 인간의 주의를 끌었던 적은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져 온 대결이건만 이제야 비로소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서 벗어난 것이다.

뇌하수체의 활동을 장악하기 위한 이들의 대결은 우리 몸의 에너지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에서 출발했다. 그렐린 수치가 올라가면 배고픔이라는 감각을 불러일으켜 음식을 찾게 만들고, 식욕이 충족되면 렙틴이 분비되어 기분 좋게 배를 두드리며 에너지를 저장하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우리 몸의 에너지 잔고는 늘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러나 현대에는 칼로리는 과하게 섭취하고 운동은 부족한 생활습관 때문에 그렐린과 렙틴의 전통적 대결 구도에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위장의 시계, 그렐린

1999년에 발견된 그렐린은 강력한 성장촉진 호르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원초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렐린 수치는 식사 직전에 최고로 높아지며, 식사 1시간 뒤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소위 ‘배꼽시계’가 알려주는 밥 때를 맞춰 위장에서 혈액 속으로 분비되는 것이다. 고도 비만으로 위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위 절제술도 그렐린의 분비를 줄여 식욕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이용한 치료법이다.

‘기아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그렐린이지만 무조건 밥 달라고 떼만 쓰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가 충분할 땐 분비가 줄어들고, 필요할 땐 음식 먹는 양을 늘려 에너지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밤이 되면 성장 촉진 활동까지 겸하는 그렐린은 음식을 먹으면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뇌의 보상 체계와도 연결되어 있다. 음식 먹는 즐거움은 그렐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더구나 그렐린은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 증상을 억제하는 기능까지 있다.

식욕을 제어하는 렙틴

그렐린과는 반대로 렙틴은 배가 부르고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이다. 1994년 비만 돌연변이 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렙틴은 몸의 지방세포에서 분비되어 기본적으로 체지방량에 비례한다. 렙틴은 혈액을 통해 시상하부에 전달된 뒤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뉴런들의 활동을 억제하는 반면, 충족감을 전달하는 물질은 활성화한다.

식욕이 무한정 지속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또한 밤이 되면 적당한 농도를 유지해 잠을 자다 배가 고파 깨는 일이 없도록 한다.렙틴도 다양한 일을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면역 활동을 촉진하고, 인슐린의 과잉 생성을 억제하며, 생식과 발달 과정을 돕는 역할도 하고, 항우울 작용까지 한다.

호르몬계의 과유불급

두 호르몬의 관계에는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다. 농도가 낮은 것보다 높은 것이 문제가 된다. 그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더라도 식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오히려 일반인보다 거식증에 걸린 사람의 그렐린 농도가 더 높고, 비만인 사람의 렙틴 농도가 더 높다. 넘치는 호르몬에 뇌가 길들여져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비만의 경우 어떻게든 살을 빼보겠노라고 음식 섭취량을 줄이고 운동 시간을 늘려도, 고농도의 렙틴에 익숙해진 몸과 뇌가 의도와는 반대로 체지방을 늘리는 요요 현상이 생긴다. 정상 상태에서는 면역력을 올려주는 렙틴이지만 지나치게 수치가 높아지면 내성 때문에 오히려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거기에 그렐린까지 넘쳐 식욕이 자극되면 다이어트는 물 건너 간다.

참는 의지보다 습관의 변화가 우선

호르몬은 우리의 뇌를 지배하지만 호르몬의 성격을 파악하면 조절하고 활용할 수도 있다. 아침을 거르는 습관은 그렐린 농도를 점심때가 돼야 올리기 때문에 폭식과 비만의 원인이 된다. 아침을 거르는 사람일수록 비만이 되기 쉽다. 저녁 식사 직후 최저점에 이른 그렐린 농도는 4~5시간 지나면 다시 올라간다.

이때가 되면 슬슬 야식이 생각나기 때문에 그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도 그렐린의 분비를 자극하고, 지방을 축적하게 만드는 코르티솔을 증가시키니 여러모로 다이어트의 적이다.

음식의 종류도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 술은 열량이 높지만 그렐린의 농도는 올리고 렙틴의 농도는 낮춘다. 이른바 ‘안줏발’을 세우고 해장국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수입된 유전자 변형 옥수수을 주원료로 한 옥수수 시럽도 큰 문제다.

음료수, 과자, 샐러드 드레싱을 비롯해 가공식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시피 하는 옥수수 시럽은 과당이 주성분이다. 포도당과 달리 과당은 두 호르몬 모두 감소시키지 않아 콜라 한 병을 들이켜고 과자 몇 봉지를 먹어도 뇌에 기별이 가지 않은 현상을 낳는다. 그러니 패스트푸드를 ‘쓰레기 음식(junk food)’이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뇌가 변화할 수 있도록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노력이 두 호르몬의 평화공존에 필요하다. 음식 조절은 서서히, 운동은 꾸준히, 잠은 충분히, 식사는 천천히, 식단은 신선하게 구성한다면 진정한 몸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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