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빔밥에 담긴 두뇌 창의성의 비밀

[칼럼] 비빔밥에 담긴 두뇌 창의성의 비밀

장래혁의 휴먼브레인 - 32


밥에 나물·고기·고명·양념 등을 넣어 참기름, 고추장으로 섞은 비빔밥. 외국인들에게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외국 항공사에서도 기내식으로 제공될 만큼 인기가 높은 한류 음식. 재미난 것은 비빔밥이란 음식을 눈여겨 살펴보면 뇌의 ‘창의성(Creativity)' 발현과정의 핵심요소가 깃들어져 있는데, 그 연관성을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골동반(骨同飯), 섞고 비빔의 대표요리 비빔밥

비빔밥은 원래 골동반(骨同飯, 혹은 骨董飯)이라 불렸는데, 골동반은 ‘어지럽게 섞는다’란 뜻으로 음식의 특성을 나타낸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처럼 섞고, 비비고, 끊이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비밤밥은 섞고 비비는 음식 가운데에서도 한국적 음식문화의 원리와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섞고 비비는 비빔밥의 요리특성을 뇌과학 차원에서 한번 들여다보자. 인간의 뇌는 간단히 말하면 외부로부터 정보를 입력받고, 처리하고, 출력하는 ‘정보처리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관점에서 보자면 ‘창의성’이란 고차원적 뇌기능은 뇌에 저장된 수많은 정보의 축적을 바탕으로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보의 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정보의 축적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할 때 창조의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통합’과 ‘융합’인데, 비빔밤에 바로 이 핵심 발현과정이 깃들여져 있다.

뇌기능을 높이는 정보의 ‘통합’과 ‘융합’

우선 ‘통합’과 ‘융합’의 의미를 살펴보자. 둘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질적 정보들이 물리적으로 섞여 이후에 원래의 정보들이 가졌던 속성이 유지되는 경우는 ‘통합’이고, 그 정보들이 새로운 형태 혹은 속성으로 변화되는 화학적 결합과정이라면 ‘융합’이라 볼 수 있다. 그럼, 비빔밥은 통합일까, 융합일까.

비빔밥은 처음에 있는 서로 다른 이질적 음식재료들이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버무려지면서 하나의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된다. 그렇다고 그 재료들의 속성과 형태가 변하지는 않았으니 통합형 음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으나 ‘섞고 비비는’ 과정을 통해 맛은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것으로 바뀌었다.

요리를 끝낸 음식을 먹어 보면 그 변화된 속성을 ‘느낌’으로 자각할 수 있다. 결국 융합형 음식으로 변화된 셈이다. 요리할 때는 통합, 먹을 때는 융합의 특성을 가진 비빔밥은 어찌되었든 다양한 정보의 통합과 융합이라는 창의성 발현과정을 잘 갖추고 있는 셈이다.

촉매 역할의 고추장과 참기름, 기존 정보의 ‘승화’

여기 비빔밥이 갖는 창의적 요소가 또 하나 있다. 기본적으로 비빔밥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음식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얘기하는 건강식이라는 점이다. 보통 채소, 고기 비율이 8대 2면 건강식이라는데 비빔밥은 거의 근접하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재료와 구성비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은 비빔밥이 최고의 건강식 재료들이 단순히 섞이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고추장과 참기름의 역할인데, 섞고 비비는 과정을 통해 음식이 고유의 맛을 잃는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창의성이란 다양한 정보의 통합과 융합과정을 통해, 기존에 가졌던 정보들의 내재적 속성 보다 한 단계 나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빔밥은 특별하다. 다양한 건강식 재료들이 고추장, 참기름과 만나면서 새로운 차원의 ‘맛’을 낸다. 섞고 비비는 정보의 통합과정을 더 밀도 깊게 할 뿐만 아니라 기존 정보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셈이다. 비빔밥이 가진 맛의 비밀이자, 기존 정보의 통합과 융합과정을 넘은 ‘승화’의 단계라 할 만하다.
 
기존 질서의 파괴 그리고 새로운 창조

마지막으로 비빔밥에 담긴 창의적 요소 중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바로 기존 질서의 파괴와 창조이다. 비빔밥은 식재료들이 발산하는 빛깔이 선명하고 다양하게 어우러진 음식으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더 화려해서 백화요란(百花燎亂), 즉 ‘온갖 꽃이 불타오르듯이 찬란하게 핀다’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이다. 뇌에 주는 시각적 자극이 매우 충만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꽃이 만발한 것처럼 예쁜 이 수려한 음식을 먹기 위해선 반드시 그 아름다움을 ‘파괴’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넣은 고추장으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셈이다. 하지만, 그 파괴는 단순한 무너뜨림이 아니라 새로운 승화된 ‘맛’을 내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창의성 발현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도 기존의 사고패턴, 행동양식 등 기존 질서를 벗어나는 의식과 행동에 기초한다고 본다면, 비빔밥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지는 않을까. 미래의 나의 모습이 현재의 나 보다 성장하길 바라는 것이 ‘희망’이라면, 보다 나은 ‘변화’를 위해선 때로는 기존의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거나 새롭게 바라보는 용기와 사고의 전환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흔히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섞으면서 말이다.

글. 장래혁 뇌칼럼니스트,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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