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라이프] 동짓날 긴긴밤

[공생 라이프] 동짓날 긴긴밤

간신(刊腎)을 다스려 간신히 사는 시절

브레인 91호
2021년 12월 21일 (화) 16:55
조회수1114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1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날

양력 12월 22일 무렵인 동지(冬至)는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길고 긴 침묵의 밤은 곧 다가올 새로운 탄생을 예고한다. 이날을 기점으로 보일락 말락 아주 조금씩 낮이 길어지고 양기(陽氣)가 올라오기 시작하니 동지는 한 해의 따뜻함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따뜻함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날은 여전히 춥고, 앞으로도 추울 날은 더 많이 남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도 반드시 따뜻해진다. 동지 부근의 성탄절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바로 그날 밤에 구세주인 왕이 나셨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솟아나니 그 빛은 어떻게든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내면 한줄기 희망이 솟아날 것이라는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양에서는 동짓날을 아세(亞歲), 즉 ‘작은 설날’이라고 불렀는데 이날은 ‘태양탄생일’이라고도 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태양이 하루하루 올라와 부활하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는 촛불을 환하게 밝히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했는데 이것은 어둠과 빛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이때 빛을 지켜내고자 하는 행위였다. 


▲ 출처: 프리픽

긴긴밤 채워 넣는 동지책력(冬至冊曆) 

동지는 하지(夏至)와 더불어 이지(二至)이다. 하지에는 양기가 최고조에 올랐다가 점점 음기로 향해가고, 동지는 음기가 최고조에 올랐다가 점점 양기로 향해간다. 이때를 분수령으로 낮과 밤, 추위와 더위의 백터(Vector)가 뒤바뀌게 된다.

옛 사람들은 음양이 바뀌는 시기에는 반드시 적극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질병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음양이 교체되는 때에는 특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갖가지 방식으로 음양의 순조로운 변화를 꾀하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이 다양한 풍속을 낳았다. 

그런 풍속 중의 하나가 '하선동력(夏扇冬曆)'으로 하지에는 부채를, 동지에는 달력을 주고받는 것이 그것이다. 동짓날 주고받는 달력을 ‘동지책력’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앞으로 펼쳐질 1년의 계획을 빼곡하게 적어 넣었다. 

황진이의 시(詩)처럼 동짓날 기나긴 밤 한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속에서 굼뜨게라도 꼭 해야 할 일은 다음 해에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깊고 깊은 계획과 궁리, 그리고 돌아온 날들에 대한 성찰이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꼭 해야 할 일, 그것이 바로 동짓날 긴긴밤의 진짜 명상이다.  

‘간신(刊腎)’을 다스려야 간신히 산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이유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해서 몸이 근질근질하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실상은 정반대이다. 지갑도 술집 문도 화끈하게 열어젖히다 보면 간(刊)은 점점 상하게 되고, 음주 가무의 단짝인 정(精)은 서서히 고갈된다. 이즈음에는 해독작용을 하는 간과 정을 응축하는 신장(腎)이 손상될 우려가 크다. 

‘겨우’ 또는 ‘가까스로’라는 뜻의 ‘간신히’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간신히’의 간신(艱辛)의 본래 뜻은 ‘어렵고 매운’이라는 의미이지만, 이것을 간장의 ‘간(刊)’과 신장의 ‘신(腎)’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동짓날 먹는 팥죽은 신장의 기능을 활성화해 기력을 보하는 역할을 하고 숙취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긴긴밤 동지팥죽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가 아닐까? 동지팥죽은 연말 동안 달리고 달린 간과 신장을 위한 숙취 해소용 특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출처: 프리픽

계절상으로 겨울은 수(水) 기운이 왕성하다. 수 기운에 해당하는 장기는 신장이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여기에 삿된 기운이 침투하기 쉽다. 겨울에 조금만 방심해도 허리가 삐끗하는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행(五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데 수 기운은 목 기운을 살리기 때문에 (수생목(水生木)의 원리) 연말에는 딱 수(水)에 해당하는 신장과 목(木)에 해당하는 간이 상하기가 쉽다. 살아남으려면 간과 신장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차분히 앉아 새해의 로드맵을 구상할 것이 아닌가. 

한 해를 잘 살려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간신(刊腎)을 온전히 보전하자. 동지 무렵에는 ‘간신히’를 꼭 기억해야 한다. 긴긴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따뜻한 동지팥죽으로 신장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불 속에 파묻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1년을 계획하는 깊은 명상이다. 그때 우리의 마음 속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한 줄기 빛이 스멀스멀 솟아오를 것이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는 분명 태양같은 희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거기에 왕이 나셨도다. 그래, 분명히 빛은 있다. 

글_신은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SBS 시사교양국 방송작가로 일하다 미국 세도나에서 명상을 만나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다. 현재 힐링명상 체인지TV, 일지스튜디오 책임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 참고자료 
절기서당 (북드라망), 중국인의 전통생활풍습 (국립민속박물관)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