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과학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세포나 소립자를 의인화해보는 것이다. 뭔가를 의인화를 한다는 것은 그것들이 살아있고 우리처럼 생각을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원자(원자보다 작은 세계) 단계를 다루는 입자 물리학은 양자물리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양자물리학에서 등장하는 ‘초끈이론’을 보면 아주 작은 끈들이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감기거나 진동을 하면서 개성을 만들고 전혀 다른 성격의 물질을 만들어 원자가 된다. 이는 재즈를 연주하는 기타 줄(현)의 길이가 달라져서 소리의 주파수(진동수)가 달라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양자물리학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단순화해보면 미립자(전자)들이 관찰자(인간)의 의도를 읽는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두뇌 속의 뉴런과 시냅스도 마찬가지다. 두뇌에서 생각이 생기는 현상을 양자 적으로 해석하는 과학자들도 있는데, 뉴런들도 우리 인간들의 마음과 정신처럼 서로서로 상호작용하는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것(thing)이 아닌 놈(person)이라고 불렀다.
기억한다는 것을 요리조리 연구해보면, 기억이란 전적으로 각각의 뉴런과 뉴런들 사이의 시냅스가 서로 손을 잡은 후 협력하면서 구조(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구조를 따라서 생화학 전기(신경전달물질과 이온)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즉 각각의 뉴런들이 어떤 형태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군무나 매스게임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매스게임이 인상 깊은 이유는 실수가 작기 때문이다. 실수가 거의 없는 이유는 매스게임을 연습하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매스게임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그런 정치적 구조를 만드는 기억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아마도 구타나 폭압을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습에서도 구타를 당하며 배우면 매우 뚜렷한 기억을 하게 되는데,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주인공이 경찰시험에 합격한 비결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이미 배운 것들을 새롭게 조합하여 더욱 신선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창의력에는 해롭다.
뚜렷한 기억은 하는데 그 기억을 하는 과정에서 뉴런 간의 다른 연결이 생기거나 다른 경로까지 자극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창의성은 생기지 못한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온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의 경우처럼 여유와 실수와 휴가는 창의성의 중요한 바탕이다. 그래서 창의성이 중요해진 현대의 교육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보다 여유롭게 개성을 살리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북한식의 매스게임은 이미 컴퓨터가 너무나 완벽하게 잘하기 때문이다.
장기기억을 한다는 것은 주인님(정신)이 어떤기억을 요구할 때, 뉴런들이 주변의 동료 뉴런들과 어떤 형태의 매스게임을 그때마다 다시 하자고 약속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필자는 학창시절 운동회를 할 때에는 학부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군무를 단체로 연습했다. 10대 20대에는 멋진 신곡이 나오면 노래방에서 하숙집의 그녀에게 멋지게 불러주기 위해 신곡을 여러 번 듣고 따라 하며 연습했다.
각자 그렇게 유혹의 기술을 익히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또는 태권도의 승급심사에서 품새를 연습하던 때를 기억해보자. 무용 공연을 연습하고 악보가 길었던 크리스마스 특별찬양을 연습하던 때를 기억해보자. 친구와 ‘이소룡’의 무술책 ‘절권도’를 연습하며 ‘아비요~~’를 외치던 때를 기억해보자.
절차에 실수가 없이 심사를 통과하려면 연습기간이 보름 정도는 걸렸을 것이다. 인간이 매스게임이나 무용이나 무술이나 군무나 신곡을 연습해서 몸에 익숙하게 만들 듯이 뉴런들도 시냅스라는 팔과 다리를 뻗어서 마치 뮤지컬 아리랑 공연을 하듯 손을 잡거나 놓거나 한다.
손이 5만 개에서 100만 개라서 어떤 손으로 어떻게 어떤 뉴런과 손을 맞잡고 땀(전달물질)을 흘릴지가 서로 다른 기억과 암호 코드를 만든다. 뉴런들 사이에서 어떤 형태의 구조가 얼마나 넓게 자극되어야 ‘A’라는 기호가 되거나 ‘가’라는 글자가 되는지는 아직 연구 중이다.
중요한 것은 뉴런들을 사람으로 의인화해보는 것이다. 그놈들도 우리가 어떤 기억을 재인(재현)하길 바랄 때에는 우리의 생각에 맞게 전에 입력받아 연습한 그대로 어떤 구조와 순서를 가진 매스게임을 그대로 해야 한다. (잠시 우리의 어떤 생각과 신호를 기다리며 늘 긴장을 하는 뉴런들에게 감사의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뉴런들에게 우리가 기억을 요구하는 것은 체육대회나 오디션이나 승급심사나 예술대학의 대입 실기시험에서 연습한 대로 재현하게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놈들(뉴런)도 스스로 반복해서 공부하거나 리허설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는 분석도 있다.
인간이 기억(생각)의 시설기반을 갖추기위해서는 대략 10년에서 15년의 두뇌 형성기간이 필요하며(그래서 학문에 뜻을 두는 지학이 15세이다), 특정한 매스게임을 연습해서 다시 재현할 정도로 숙달을 하려면 보름이나 20일이 걸리는 것이다. 교회에서 4부 합창 성가대를 하거나 운동장에서 군무를 할 때 중간에서 꼭 엉뚱한 짓을 하거나 알토가 소프라노를 따라가는 여성이 있다. (필자는 중고등학생 때 테너를 5년 했다.)
그렇게 연습시간을 길게 만드는 짜증 나는 분들이나 경력이 짧은 신참들 때문에 연습은 자꾸 길어진다. 뉴런과 시냅스도 마찬가지다. (군대의 예를 들어서 대다수 여성에게 미안하지만) 늘 전역하는 병장들이 있고 보급품이라 불리던 신참들이 새로 들어오기 때문에 늘 다시 전투훈련(기억)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물론 말뚝을 박는 병장들 덕분에 그 부대의 전설과 전통이 오래 이어진다. 짬밥(군대의 식사)을 먹으며 교범을 외우다 보면, 작대기(새우깡) 4개(병장)위에 갈매기 세 마리(상사)와 그 위에 무지개(원사)가 뜨듯이 시냅스가 굵어지고 세포에 수용체(receptor)가 많아진다. 더욱 더 오래 생존하는 굵기가 두꺼워진 시냅스가 말뚝을 박은 병장이 늙어가며 노련해지는 하사관이나 장교들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역이나 은퇴가 없는 삶이나 군인은 없다. 따라서 기억은 영원할 수 없으며 유격장과 내무반에 떠도는 전설 속의 전역한 고참의 축구 이야기나 사격 고득점 이야기나 면회 온 여성의 미모나 숫자 이야기가 전설을 따라서 왜곡되듯(거의 미화가 되거나 부풀려진다.) 우리의 기억도 왜곡되고 미화된다. 누군가의 기억은 더 어두운 색으로 바뀌기도 하고 누가 애인이었는지 범죄자였는지를 혼동한다.
실수하거나 장기기억을 잘 못하는 어린 신참들이나 자식들에게 보다 더 따듯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 나름대로 노력을 인정하며 대할 때, 우리 인류의 기억과 역사는 더 창의적이고 더 아름답게 미화되어갈 것이다.
글. 고영훈 멘토브레인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