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가 황안나

도보여행가 황안나

*창조적인 뇌 3

브레인 19호
2013년 01월 14일 (월)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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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선택하는 사람의 것, 내 나이가 어때서?

해남 땅끝에서 임진각까지 혼자서 23일 만에 국토 종단, 1백10일간 4천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 일주. 
대한민국의 웬만한 산은 모두 섭렵, 네팔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길까지 점차 해외로 발자취를 넓혀가는 명실상부 도보여행의 대가.
《내 나이가 어때서》《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의 저자이자 여러 잡지에 여행기를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그에 더해 하루에도 1만 명 이상 다녀가는 인기 블로그(kr.blog.yahoo.com/ropa420kr)의 운영자이자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강연 섭외가 줄을 잇는 강연자.

이 모든 수식의 주인공 황안나 씨. 그는 이번 겨울을 지나면 일흔한 살을 맞는다.


“거창하게 계획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1998년도에 학교 그만두고 새벽 등산을 열심히 하다가 인천 산악회에 가입했고, 산악회 따라 우리나라의 이름 있는 산은 거의 다 다녔어요. 어느 날 산악회에서 광주에 간다는 공고를 보다가 문득 나는 광주에서 해남으로 가서 국도를 따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상시 등산 장비에다 지도, 나침반, 비상약, 우비 정도 더했어요. 심지어 스틱은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빼고요. 비오면 숙소에서 쉬어야 할 텐데 무료할 것 같아 책도 두 권 넣었죠. 배낭 무게가 13킬로그램이나 됐어요. 모르니까 겁이 없었죠.”

65세 나이에 혼자 나선 국토 종단이었다. 너무 걱정할 것 같아 남편에게는 산악회에서 다함께 간다고 둘러댔다. 39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그는 정년을 8년 앞둔 57세에 퇴직했다. 그 역시 차를 마시며 문득 환갑을 2년 남긴 삶을 돌아보다 내린 결정이라 했다. 퇴직 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며’ 라틴댄스반에 등록해 신나게 춤을 배웠고, 그 무렵부터 새벽마다 동네 근처 산을 등반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은 새벽 운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고, 그 후 이어진 산악회 활동도 체력 유지에 한몫했다.

“한비야 씨 책을 보니까 40일 만에 국토 종단을 했다고 해서 나도 그 정도 예상을 하고 떠났는데, 임진각까지 23일 걸렸어요. 혼자라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긴장도 되어 그저 막 걷기만 한 거죠. 차라리 누가 강력히 말려줬으면 싶을 정도로 무서웠으니까. 그럼에도 가야겠다는 열망이 더 컸으니 신기하죠.

그 길은 제 안에 눌려 있던 뭔가를 풀어내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날 통일전망대에 거의 도착해 철조망 너머 바다를 보는데 통일이 되었다면 이대로 신의주까지 갔으리라 싶고, 내 생에 북녘까지 갈 기회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년에는 동해로 가서 남해, 서해를 타고 임진각까지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도는 해안 일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길을 마치면서 길 떠날 결심을 한 거죠.”

하지만 해안 일주는 국토 종단을 마친 후 2년 뒤 실행에 옮겼다. 국토 종단 후 황안나 씨는 ‘65세 국토 종단 할머니’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일 년간 준비를 거쳐 다음 해 첫 책 《내 나이가 어때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다. 



‘이만 하길 참 다행이다’ 하고 생각을 바꾸면 

해안 일주는 동해에서 서해로, 해안선을 따라 완도, 보길도, 임자도, 강화도 등의 섬까지 포함해 4천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로 총 1백10일이 걸렸다. 첫 여행이 자신과의 만남이었다면 해안 일주 길은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 수많은 이와 만남의 연속이었다.  

“세상이 무섭다고들 하지만 아직은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자기 이득 생각하지 않고 내어주고,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일부러 길을 돌아 안내해주고.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며 아픈 이야기를 서슴없이 털어놔요. 그들의 삶을 들으면서 제가 더 풍요로워졌죠.”
그 소중한 이들과는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도 진행 중인데, 사실 중간에 컴퓨터 하드 이상으로 원고가 손실된 적이 있었다.

마감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기에 그는 물론 출판사 측도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안나의 즐거운 인생비법》이 먼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그의 블로그 메뉴 중 가장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그의 촌철살인 실수담 시리즈 ‘앗 나(안나)의 실수’ 중에서 선별한 내용이다. 기자도 이 메뉴의 열혈 팬이라고 고백하니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나이 들면 건망증이 심해지는데 나는 증세가 더 심해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실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들을 올려놓은 건데, 그것이 책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지금도 제목에 ‘비법’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이 정말 부끄러워요. 다만 나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실수 좀 했다고 걱정하고 자책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그 순간 이만 하길 다행이라 여기고 생각을 전환하면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돼요. 세상 일이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 하잖아요. 맞는 말이에요.”


망설이고 주저할 시간에 그냥 하는 것

그는 올해 일흔이다. 잔치를 하겠다는 자녀들을 설득해 남편과 함께 가는 제주도 올레길 순례로 칠순 잔치를 대신했다. 부부가 함께한 길은 특별한 기억을 남겼다.

“남편이 걸음이 빨라요. 저는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싶은데 어찌나 빨리 가는지. 그런데 문득 생각하니까 이 길 위에서는 남편이 빨리 걷다가도 잠시 기다려주기도 하고, 만나서 다시 같이 걷기도 하는데 인생길 위에서는 먼저 가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당신 너무 빨리 가지 말라’고 했더니 남편은 걷는 속도를 말하는 줄 알고 다음 날부터 천천히 걷겠다 하더라고요. 한참 웃었어요.”

나이에 대한 편견,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라는 편견을 넘어 이해하고 격려하며 가장 좋은 길벗이 된 부부, 노부부가 길게 뻗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풍경을 그려본다.

“2007년에 큰아들 내외랑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걸었는데, 유럽이나 일본에서 온 나이 든 분이 많았어요. 매년 구간을 나눠 걷기도 하고, 노부부가 함께 걷기도 하고. 그곳에서는 그런 모습이 특별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단한 뉴스가 돼요. 건강만 괜찮다면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시절이 노년이에요.

퇴직 후 20년 가까이를 멍하니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깝죠. 사실 제가 이렇게 유명해진 것도 할머니가 혼자서 국토 종단을 하고 해안 일주를 했다는 것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저는 나이 덕을 본 셈이네요.”

최근 그는 영어 공부에 열심이다. 해외 강연이나 해외여행을 가보면 영어 실력이 아쉽다. 확실히 암기는 어렵지만 남들 한 번 읽을 때 대여섯 번 읽으면 된다고. 그런 그이에게 앞으로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실패를 겁내는데, 그 이유는 결과에만 치중하기 때문이에요. 결과에 매달리다 보니 오히려 과감하게 도전을 못하게 돼요. 지나고 나면 후회하고요. 저는 실패하더라도 일단 하고 봐요.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하다 보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보고 용감하고 결단성 있다고들 하는데, 전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다만 저는 이제 망설일 시간이 없잖아요. 뭘 더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겠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은 건 별로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기려 하죠.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의미가 없어요. 하는 것, 해보는 것, 남은 날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글·이영실 miso@brainmedia.co.kr | 사진·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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