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 쪽진머리, 가체, 두루마기,줄넘기, 팽이치기가 북남미 원주민의 전통문화라니

상투, 쪽진머리, 가체, 두루마기,줄넘기, 팽이치기가 북남미 원주민의 전통문화라니

국학원 156회 국민강좌서, 손성태 배제대 교수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고 간 우리민족의 흔적' 강연

"우리 고대사는 그냥 옛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12일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강당에서 열린 국학원 제156회 국민강좌에서 손성태 배재대학교 스페인어 중남미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로 이동한 우리민족의 흔적'을 주제로 아메리카 원주민이 우리 한민족과 같은 핏줄임을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역설했다.

손 교수는 우리 고대사에 남아 있는 의문을 몇 가지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 국학원은 12일 손성태 배재대학교 교수를 초청하여,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로 이동한 우리민족의 흔적'을 주제로 제156회 국민강좌를 개최했다.

진수의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기원후 3세기까지 북으로는 아무르에 이르고 남으로는 요동에 이르는 만주대평원과 한반도를 차지하고 살았던, 중국 북방 민족들 가운데 가장 크고 강한 민족이었다.
  그런데 10세기에 발해가 멸망하고 고려가 건국되었을 때의 우리민족의 영토와 인구는 주변 다른 민족에 비하여 갑자기 줄어 있었다. 3세기까지 우리 선조들에 비하여 인구수가 매우 적었던 주변 민족들, 예를 들어, 거란과 숙신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0세기에는 먼저 거란이 만주대평원과 중국 하북지방을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는 요(遼)를 건국했고, 12세기 초에 그들이 오늘날의 키르키스탄이 있는 서쪽으로 떠나자, 그들의 지배하에서 만주 동쪽에 거주하던 숙신의 후예 여진족은 그 거대한 영토에 금(金)나라를 세웠다.
  3세기까지만 해도 숙신은 인구수가 우리민족에 비하여 너무나 적어, 스스로 부여에 찾아와 신하가 되었고, 부여는 그들에게 무거운 조공을 매년 바치도록 명령하였으며, 말을 듣지 않으면 여러 차례 정벌하였다. 그런데 10세기에는 오히려 우리 선조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 만주대평원을 저들에게 내어주고, 한반도 청천강 이남의 좁은 지역만을 차지하는 약소민족으로 돌변하였다.
▲ 손성태 배제대 교수는 북남미 원주민의 전통문화, 언어 연구를 통해 고대에 우리민족이 이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661년 고구려 보장왕 때 북한산성에 있던 신라군 공격에 고구려는 말갈병을 동원했다. 612년 영양왕 때 수나라의 요서 공격에도 말갈병 1만명을 동원했다. 고구려 병사는 어디로 갔는가? 그 이전에 부여는 백성이 떠나 왕이 스스로 왕조의 문을 닫고 고구려에 와서 신하가 되었다.
손 교수는 3~7세기 만주 대평원에서 사라진 고구려 백성수는 1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모두 북쪽으로 이동했다. 고구려도 부여도. 북으로 가서 그들이 머물러 산 곳은 어디인가?

여기서 손 교수는 경주에서 출토된 5세기 동물 모양의 유물을 하나 소개했다. 멕시코개미핥기를 본따 만든 것인데 몸의 비율이 정확한 것으로 보아 고고학자들은 멕시코개미핥기를 실제 보고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멕시코에서 산다는 개미핥기. 당시 신라사람들은 이 개미핥기를 어떻게 보았을까.

손 교수는 멕시코로 눈을 돌려 각종 사진자료와 문헌자료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17세기 멕시코 원주민들은 상투를 틀고 두루마기를 입었다. 색동저고리에 쪽진머리를 한 여인들도 있었다. 붉은 볼연지를 한 여인, 가체를 한 여인, 금줄 풍습-우리민족의 풍습이 그대로였다. 그들은 종이 만드는 법도 알았다. 후한 때 채윤이 종이를 처음 만들었으니 그 방법을 알았던 이들이 이주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3~7세기에 우리민족이 이동했고 918년 고려 건국시 약소국이 된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손 교수는 팽이치기, 장대말타기, 줄넘기, 숨바꼭질, 공기놀이, 고수놀이, 달집태우기 등 우리의 전통 놀이가 멕시코에도 그대로 남아, 지금도 즐긴다는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 손성태 배제대 교수가 고대 우리민족의 급격한 인구감소 현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언어에서도 달집태우기는 스페인어로 기록된 명칭을 보면 ‘달집놀이태와’로 되어 있다.

그는 우리 선조의 통치체제를 보면 부여, 고구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영토를 4구역으로 나누어 통치를 했는데, 아스태가제국의 수도, 잉카제국, 마야제국은 한결 같이 네 구역으로 나누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대학에서 북미원주민을 연구할 때 자료에 우리말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고, 언어가 있으면 풍습도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연구를 시작하여 아메리카 원주민이 우리과 핏줄을 같이한 한민족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인디언문화와 언어를 연구한 미국학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을까? 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문화가 한국의 전통문화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원주민 고유의 것으로만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 문화를 알고 있으니까, 원주민의 문화를 보면 그것이 우리 것인 줄 금방 안다.”
 북남미 원주민들이 그들의 뿌리가 한민족임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는 우리 민족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손 교수는 강조한다.

한편 제157회 국학원 국민강좌는 8월 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빌딩 지하대강당에서 열린다.  이날 탈북영화감독 1호인 김규민 감독이 "북한을 아는 것이 통일로 가는 길(소제목 : 영화로 보는 북한)"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글/사진.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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