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인문학] 인문學을 넘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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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인문학

브레인 82호
2020년 06월 18일 (목)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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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최근 몇 년간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대결이 안겨준 충격으로 시작되어 기술혁명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너도 나도 고민하고 되었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 19 대유행은 온 우주의 중심에 있던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고 또한 개발과 경제성장을 향해 질주해 오던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붕어란 무엇인가?’ 혹은 ‘마그네슘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질문의 대상이 질문의 주체이기도 해서, 현재 상태를 분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멀리는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부터 영국 드라마 <휴먼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기계(사물)의 경계에 대해 무겁게 혹은 가볍게 다룬 이야기들을 보면서, 우리가 가꾸어야 할 인간만의 가치는 없는 것일까 질문하게 된다. 

나에게 인간의 위대함을 느낀 가장 감격적인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처음 읽었을 때였다. <에티카>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주요 주제인 신, 정신, 정서, 지성, 자유 등의 주제를 기하학적 논증으로 증명한 책이다. 

나는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눈물이 흘렀다. 이 딱딱한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린 이유는 스피노자에 대해 교수님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스피노자는 네덜란드로 이주한 유대인 가문으로, 교회 제도에 대한 급진적 사상 때문에 유대교에서 파문을 당했다. 이후 그는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지적 탐구를 위해 안경 렌즈를 가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는데, <에티카>가 세상에 알려져 또다시 이단으로 몰리고 책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까 두려워 매일 밤 원고를 베개 밑에 베고 잤다고 한다. 복을 구하고 기도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최고의 앎으로서의 신神을 합리적 이성의 힘으로 찾아가는 그의 글을 따라가며 아이러니하게도 구도자의 숭고함을 느꼈다. 

인간은 물질적 세계와 시간을 초월해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그걸 통해 인간으로서의 삶에 방향이 생기고 충만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전문가와 학자들에게 기대어 보편타당한 진리를 학문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인간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그들에게 맡겨버린 것 같다. 

# ‘포스트 코로나’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코로나 19 이후 인류의 미래에 대한 세계의 석학들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코로나 19 대유행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격돌의 충격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류의 문명을 흔들고 있다. 

인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정보의 대혼란 속에서 때로는 경제적 불안함에, 때로는 낙관과 기대감에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읽곤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질주해왔던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고 싶다면 그 변화를 위한 답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들 속에 있지 않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답과 실현하기 위한 동기부여는 학문적 논증의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선택의 진위眞僞가 사실들의 조각으로 증명될 수 없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실존적 체험을 통해서만 확신할 수 있다. 존재가치의 실현은 논리적 결과가 아니라 신념으로 만들어지는 창조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이 셀프힐링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자기조절 기법으로 대중화되고 있지만, 이제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해가는 자기개발의 방법으로 발전되었으면 한다. 

1959년 인도의 과학자인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Maharish Mahesh Yogi)가 미국에 초월명상을 소개하면서 그동안 종교적 수행법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행해오던 명상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존 카밧진 박사가 치료의 목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기반으로 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2007년 구글의 차드 멍 탄은 직원들의 감성지능 강화프로그램으로 ‘내면검색Search Inside’을 내어놓았다. 한국에서는 기공과 명상 등 한국 고유의 선도 수련의 원리와 수행법을 현대 뇌과학과 접목해 뇌교육으로 체계화되었다. 

뇌교육은 ‘정보처리’의 관점에서 자신의 현재 의식 상태를 자각하고 더 높은 의식상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국식 명상을 활용한다.  

동양의 심신수련법인 명상이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증명하는 많은 연구들이 나왔다. 인지능력과 문제해결능력, 긍정정서 강화, 감정조절능력 향상, 관계개선 등 기능적 변화와 생리적 변화를 증명하는 연구들이 풍부하다. 

그러한 실증주의적 연구들 덕분에 명상이 종교의 벽을 넘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숫자로 드러나는 명상의 효과뿐만 아니라, 일반화는 어렵지만 명상 수련자들의 체험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에 대한 이해의 변화, 인간의 가치에 대한 발견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세계적 석학들과 전문가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통찰을 제공해줄 수 있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개개인이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변화한다. 

물질이 물질을 창조하는 시대.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는 시대. 이제 필요한 것은 물질적 현상의 탐구에 적합한 실증적 방법을 기반으로 한 단선적單線的 연구가 아니라, 선택과 의지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을 대상이자 주체로 하는 체험적 탐구이다. 명상이 그렇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글. 김지인 jkim618@gmail.com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디자인학교 Pratt Institute 석사과정 중 인생행로를 인간 뇌의 가치실현에서 찾고 대학원을 중퇴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방법을 익히고 나누려는 삶의 이정표를 따르고자 미국, 일본 뇌교육 현장에서 10년간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뇌포털 브레인월드닷컴 기획팀장을 거쳐, 현재 유엔공보국(UN-DPI) NGO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팀장을 맡아 국제사회에서의 뇌교육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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