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인문학] 나는 쓸모 있는 존재인가?

브레인 Vol.85

브레인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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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김지인 기자 |입력 2020년 12월 28일 (월)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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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배우고 일한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얻어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한때 노력하면 된다는 기성세대의 충고를 비꼬는 ‘노오력’이라는 신조어도 유행했고, ‘부모 찬스’가 없는 이들을 ‘흙수저’라고 부르기도 한다. 

2019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The Meritocracy Trap(능력주의의 함정)》이라는 책이 2020년 한국에서 《엘리트의 세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그동안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함이라는 관점에서만 한국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왔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풍부한 자료들을 통해,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왜 작동하지 않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능력주의’는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소개한 용어로, 능력 혹은 실력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엘리트의 함정》의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는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 상황은, 기회가 불평등하거나 과정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라 능력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 모두가 규칙을 지켜 경쟁한다 해도 부자만이 이길 수 있는 경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엘리트가 능력주의에서 경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강도 높은 노동, 둘째는 값비싼 교육 투자이다. 

엘리트는 놀면서 돈을 벌지 않는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의하면 고소득자의 62%가 주당 50시간을 일하고, 3분의 1 이상은 주당 60시간을 일한다고 한다. 그리고 10명 중 1명은 주당 80시간 이상 일한다. 마코비츠에 따르면 오늘날 엘리트들은 중산층 근로자들보다 주당 12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첫 세대 엘리트 근로자가 고숙련 직업(변호사, 의사, IT 전문직 등)을 얻으면서 기술 혁명과 경영 혁신을 통해 중산층 근로자가 담당하던 노동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방식으로 중산층 중간 관리자(화이트컬러)들을 점점 쓸모없는redundant 존재로 만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능력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도태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라고 자책하도록 만든다.

그 반면 엘리트들은 자신의 막강한 수입을 이용해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립유치원과 과외교사, 아이비리그의 사립대학과 전문 대학원까지, 값비싼 교육을 제공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엘리트들은 부동산이나 동산이 아닌 능력을 세습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계층 간 이동이 단절되는 폐쇄적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구조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아니라고 마코비츠는 설명한다. 중산층은 가장 분명한 희생자이다. 아직 이러한 노동의 소외를 수치로 측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절망으로 인한 자살과 전례 없는 기대수명 감소가 빈곤층과 중산층에 몰리는 현상이 중산층이 노동에서 소외되는 추세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 능력주의는 엘리트들에게도 고통이다. 엘리트들에게 삶은 끊임없는 경쟁의 장이다. 자신의 능력을 자본화해서(인적 자본)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없어 내면의 삶은 점점 빈곤해진다. 

마코비츠가 묘사한 미국 엘리트들의 모습은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고 문화적 변화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지나친 경쟁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의 한 조사에 의하면 엘리트 근로자들 중 약 3분의 2가 승진으로 인해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면 승진을 거절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집안의 지나친 교육열 폐해도 강조한다. 미국의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열은 한국의 사교육 열풍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덕분에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스탠포드대, 예일대를 다 합쳐 가정의 수입 분포도에서 하위 60%에 해당하는 가정의 학생보다 상위 1%에 해당하는 가정 출신의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미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SAT 점수를 보면, 부모의 연간 소득이 20만 달러 이상인 학생이 부모의 연간 소득이 4만~6만 달러인 학생보다 평균 250점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치열한 교육열로 인해 엘리트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은 학교 수업 외에도 하루에 3~5시간씩 꼬박 숙제를 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항상 수면 부족을 겪는다고 한다. 그리고 부유층 학생들의 약물 남용률이 빈곤층 학생들보다 높다. 미국 전역에 걸쳐 우울증이나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학생들도 다른 그룹의 또래들보다 세 배나 높다. 

물론 마코비츠는 이 책에서 엘리트들과 나머지 계층으로 사회 계층을 무리하게 이분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유층에는 엘리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는 석유사업이나 부동산으로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도 있고, 한국에는 재벌 기업의 경제적 부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양극단화가 번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인간과 삶에 대해 품어왔던 가치의 기준을 성찰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능력을 통한 경쟁이 공정하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은연중에 경쟁과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1%의 부자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불행한 사회, 20%의 엘리트가 나머지 80%가 삶에서 누릴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 방향을 잃고 돌아가는 경쟁의 질주를 누가 멈추고 새로운 방향을 가리킬 것인가? 99%, 혹은 80%에 속하는 우리 한 명 한명이 경쟁과 성공이 아닌 새로운 삶의 모델을 세워야 할 때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가져온 빈곤 문제만큼 심각한 문제는 ‘쓸모’의 편중이다.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인지, 그 가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한 나는 언제나 사회 속에서 타자로 소외된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나의 행복과 내 삶의 가치는 내가 결정한다. 뇌교육의 철학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교육 헌장인 ‘뇌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은 ‘Take back your brain!’이다. 이 선언이 지금 나의 실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거시적인 문제와 미시적인 문제를 연결하는 고리로 다가온다. 

글. 김지인 jkim618@gmail.com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디자인학교 프랫 인스티튜트 석사 과정 중 인생행로를 인간 뇌의 가치 실현에서 찾고 대학원을 중퇴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방법을 익히고 나누려는 삶의 이정표를 따르고자 미국, 일본 뇌교육 현장에서 10년간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뇌 포털 브레인월드닷컴 기획팀장을 거쳐, 현재 유엔공보국(UN-DPI) NGO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을 맡아 국제사회에서의 뇌교육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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