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하고 사랑해주어야 할 남편에게 오히려 상처 입는 아내들. 왜 그들은 때리고 맞는 행위를 계속해야만 할까? 그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한국여성상담센터(http://www.iffeminist.or.kr/)의 현혜순 센터장과 인터뷰를 하며 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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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내를 때리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A. 가정폭력범은 대부분 아내가 자신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과 지시에 아내가 새로운 의견 등을 내어 놓는다면 자신이 무시당했고, 아내가 말대꾸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 폭력을 쓴다. 이런 사람일수록 열등감이 심하고 자존감 낮은 사람이 많다.
보통 성장시기에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낀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인는 것이다. 부모가 자주 거친 말과 부정적인 어휘로 아이의 존재를 비하했을 경우, 그 아이의 자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자라서 가정을 꾸렸을 때, 부인이나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상처를 쉽게 받고, 그만큼 상대에게 쉽게 분노한다.
Q. 자존감 낮은 사람이라는 말은 정말 의외였다. 그렇다면 아내를 때리는 사람은 혹시 폭력적 충동을 순간적으로 참지 못해서 때리는 것은 아닌가? 어떤 사람이 아내를 때리는가?
A.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가정폭력 가해 남성도 집밖에서는 멀쩡하다. 집에서만 화를 내며 욕하고 때린다. 이런 행위를 집밖에서 하면 범법행위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인식 차이가 나타날까? 그들에게 가정은 바로, ‘자기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가장은 집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지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폭력적 충동이나 분노조절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판단하면서 한다. 그래서 가해자를 상담하고 치료할 때 가정에서의 분노조절을 가르쳐야 하고, 가부장적인 의식에서 오는 때려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고쳐야 한다.
가해자 남편들은 기본적으로 가부장적인 사람이 많다. 이게 우리나라 유교문화와 합쳐지면서 여성 비하가 굉장히 심해진다. 여성이 자기 주장하면 본인에게 ‘말대꾸’한다고 생각하며 ‘여자가 감히’ 대든다고 생각한다. ‘하늘 같은 남자에게 네가 감히’라는 생각에 때려서라도 가르치고 밟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젊은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으로 상담 받게 된 39살짜리의 남성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런 것은 배워서 생긴 관념이다.
Q.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이혼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아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아이에게 어떤 것이 도움되는가?
A.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피해자가 많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왜 그때 아빠랑 헤어지지 않았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결국 맞고 사는 것은 피해자에게도, 아이에게도, 심지어 가해자에게도 좋지 않다.
참고 사는 것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아이들이 폭력을 배운다는 점이다. 폭력은 그야말로 세대 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딸은 폭력에 익숙해지고 아들은 폭력을 학습한다. 아들은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 쉽다. 알고 있는 갈등 해결방법이 ‘폭력’뿐이기 때문이다. 딸은 아이를 때리는 등 가정폭력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력에 익숙해진 딸은 아버지를 싫어하면서도 비슷한 남자를 만나, 폭력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아이를 위한다면 참고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고쳐서 산다면 괜찮다. 법원에 신고해 가정법원으로 가면 한국여성상담센터처럼 상담센터에서 6개월간 상담 받게 된다. 그게 아니라도 처음부터 상담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노력을 들여 가정폭력 현상을 고치지 않는다면 피해자도, 자식도, 가해자도 습관화되어 온 가족이 피해자가 된다.
Q. 자식이 부모를 때리는 사건도 있다. 센터장님 말을 들으니 이런 사건 대부분이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A. 아이를 때리든 배우자를 때리든, 폭력이 일어날 당시의 아이들은 대부분 어려서 힘이 약하고 무력할 때라 폭력 상황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부모의 폭력 상황을 보며 자신이 막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며,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게 된다.
‘두고 봐라, 내가 크면 어떻게 되나 보자’. 이런 생각이 치유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아이의 성격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아이가 공격성이 강하다면 부모가 나이 들고 힘이 약해지는 반면, 아이의 힘이 커졌을 때, 되갚는 것이다.
폭력 상황을 목격한 충격 자체가 크기 때문에 아이들도 극심한 피해를 입는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엄마가 맞는 것을 볼 때 아이의 심리적 상처가 더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상담한 케이스 중 자기가 맞을 때보다 엄마가 맞을 때 트라우마가 더 크다는 경우가 있었다. 자기가 맞을 땐 보이지 않던 폭력 상황이 엄마가 맞을 땐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굉장한 공포로 남았다. 계속 피 흘리던 그때 엄마의 모습과 자신이 느꼈던 무력감, 악마 같은 아버지의 모습 등이 계속 떠오르며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A.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혹시 데이트할 때 ‘이런 사람은 피해야 한다’는 유형 같은 것이라도 있을까?
Q. 가정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데이트할 때부터 일정한 유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 상대에게 욕을 하거나 함부로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을 비하하는 일이 잦다.
이런 사람들은 폭력 경향이 굉장히 높다. 신체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데이트 때 하던 행동은 결혼하고 나서도 유지된다고 보면 된다. 이 모든 것이 ‘정서폭력’에 해당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심리적 상처를 받아 자존감이 낮아지며,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피해자의 성향에 따라서는 같이 욕을 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 이런 형태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연애할 때부터 피해야 한다.
인터뷰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폭력은 세대를 이어 학습된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조사한 결과, 기혼 여성 사고사 중 절반 이상이 가정폭력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았으나 적지 않은 수가 가정폭력 피해사례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정폭력,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인터뷰, ‘괜찮아질 거야, 라는 부질없는 환상’에서 다룬다.
한국여성상담센터. http://www.iffeminist.or.kr/
글.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