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울이 당신을 위로할 거야

* Body & Brain

브레인 21호
2012년 03월 07일 (수)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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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당신! ‘우울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법’ 에 대한 내용을 기대하고 이 페이지를 펼친 거라면, 정말 미안하다. 차라리 건너뛰고 다른 유용한 기사들을 읽기 바란다.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자주 햇볕을 쬐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라는 등의 언급은 아예 없을 테니 말이다.

단, 우울감과 관련하여 주의할 사항이 있다. 우울감은 내 영혼이 나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신호라는 것, 그러니 우울감이 느껴질 때 그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밖으로 관심을 애써 돌리는 데 돈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우울할 때, ‘아! 때가 왔군!’ 하며, 당신의 우울 속으로 빠져들라.

그리하여 당신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과거의 슬픔과 상실을 위로하라. 미래의 불안을 달래라. 당신 안에 있는 또 다른 당신들과 대면하여 정면 돌파하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과 시간만 있으면 전액 무료로 당신의 우울을 다스릴 수 있다.


당신일지도 모르는 J씨 이야기
‘혼자서도 잘 놀기’를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만 모르는 정보를 남들은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각종 커뮤니티에 자신을 속하게 한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다양한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를 살펴보라.

J씨의 경우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동호회만 해도 다섯 군데이며(며칠에 한 번 지속적으로 들어가 정보를 읽고, 글을 남기는 수준의 활동),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모임도 서너 개가 있다. 다음은 J씨가 현재 활동하는 오프 모임에 대한 소개다.

우선 ‘삼각관계’라는 모임. 영화 혹은 연극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밥과 예술 사이에서 힘겹게 꿈을 지키는 이들끼리 1년에 몇 번 만나 자칭 훌륭한 우리들을 ‘왕따’시키는 세상을 개탄하며, 그래도 도넛의 구멍이 아닌 도넛 그 자체에 집중하며 살자 다짐하는 모임이다.

모임 이름이 삼각관계인 이유는 멤버가 여자 둘에, 남자 한 명으로 긴장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는 종교 모임도 있다. 이 모임에 속한 이유는 일정 부분 J씨의 사심이 담겨 있다. 청년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후각 천재 헬렌 켈러의 말을 빌려 그의 마음을 대변하자면 이렇다.

“젊은 남자의 냄새에는 자연을 상기시키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은 불이고 폭풍이며 바다의 소금과 같지요. 그것은 활기와 욕망으로 고동칩니다. 그것은 강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모든 것을 암시하지요.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육체적 행복을 느낍니다.” (추측건대, J는 여성이며 싱글일 가능성이 높다.)

아, 그리고 또 다른 모임도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그림 모임 그리고 직업과 연결된 공부 모임 두 군데. 그리고 사이사이 선배, 후배, 친구들도 만난다. 계산기를 두드려봐야겠지만 이 모임들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글쎄…. J씨 생활비 항목의 5위 안에는 들 것 같은데 말이다. 참 활발하게 열심히 산다는 말에 J씨가 답한다.

“그런데 이 활발한 움직임은 ‘혼자이기 두려운 마음’이 일으킨 거죠.” 


‘우주에 떨어진 외톨이’의 친구, 우울
J씨는 몇 년간 연속적인 이별이 남긴 상실감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블랙홀에 빠져 지냈다. 불면과 두통에 시달렸고, 자신의 몸체보다 더 큰 무기력이란 괴물에 짓눌린 적도 있다. 가끔 ‘더 이상 살아서 뭐 할래?’라는 마귀의 유혹이 구름이 되어 하늘 가득 걸렸다.

우울감의 독성이 온몸으로 퍼져 우울증으로 전이되기 전에, J씨는 각종 모임 활동으로 소속감을 느끼며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우울증과 우울감은 차이가 있다. 우울감은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에 여러 차례 저기압 상태가 되는 것.

우울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상적인 감정이며 대개 2~3일이면 사라진다.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이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우울은 우울증이 아닌 우울감임을 염두에 둘 것.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세상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지낸다고 생각하던 J씨, 예전에 비해 우울감을 느끼는 시간도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노라고, 쇼펜하우어가 한마디 하시더란다.

‘혼자 있으면, 초라한 자는 자신의 초라함을 온전히 느끼고, 위대한 정신은 자신의 위대함을 온전히 느낀다. 혼자 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끼게 된다.’

바쁘게 움직인 듯했지만 J씨, 혼자인 시간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우울감을 덜 느꼈을 뿐, 정작 혼자인 순간에도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며, 멈추지 못하는 것을 자각했다. 불안하고 초라한 자신을 만나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과거의 상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소통의 출구를 찾기 위해 밖으로 눈을 돌린 J씨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안과 밖의 균형을 이야기하려 함이다. 밖이 있으면 안도 있는 법. 안과 소통하는 데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거다.

인간의 의식은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끼는 순간에 수직 상승한다. 영웅 신화 가운데 영웅이 어릴 적에 버려지는 설정이 많은 것은 그것이 극적인 성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버려짐, 이별은 분리에 대한 경험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분리되고자 반항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독립된 자아를 갖춘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한 단계다(물론 이 시기에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제대로 분리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분리 체험은 비단 사춘기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마디마디에 성장통처럼 찾아온다. 구스타프 융은 이런 개인의 심리적 발달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했다.

개성화 과정은 홀로서기의 과정이며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축을 세우는 작업이다. 개성화는 자기 완결성을 가진 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이런 개성화 과정은 상실감을 통해 찾아오기 쉽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젊음을 잃고, 아름다움을 잃고, 열정을 잃고, 꿈을 잃고, 희망을 잃고, 능력을 잃고, 직장을 잃고…. 그렇게 과거의 소중한 무언가를 분실할 때 우리는 대부분 상실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불안감으로 위축된다. 초라하고 외로운 나 때문에 우울해진다.

그러나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마법의 순간이 펼쳐진다. 홀연히 깨달음처럼 아주 선명하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자의 자유로움이 온몸에 차오른다. 그 순간 초라한 나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상황은 변한 게 없지만, 우울감이란 감정을 꿰뚫었을 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확장되는 것이다. 그제야 나 이외의 수많은 외톨이들, 우주를 떠도는 고아들이 눈에 보인다. 생의 테가 넓어지면서 수용의 범위가 넓어진다. 당신은 게임에서 이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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