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

새의 날개짓에 꽃송이 날리다

뇌2003년9월호
2013년 01월 09일 (수)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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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캠퍼스 깊숙이 자리한 그의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는 서로 똑같은 소리를 했다. “이런 연구실은 처음 봐요.”

어질러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 진열돼 있는 것에 놀라 지른 탄성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틈을 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 백화점에 갑니다. 미술 작품이나 새로운 디자인을 둘러보는 일이 즐거워요.”

그렇다고 모으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려고 산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연구실에 진열돼 있는 것은 나눠주고 남은 것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미대 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한다.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공부를 할 당시 그가 미술 수업 청강을 하며 그린 그림이 한동안 학생회관에 전시되어 있었다고. 인터뷰 중에도 그는 책상 위에 종이를 펼치고 자신이 하는 말을 그래픽하게 요점정리해가며 답변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익숙한 일인 듯했다.

그는 당부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쓰면 안 됩니다.” 자신은 앞에 나서는 것이 싫고 그럴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업단장 공모에 응모하지 않았는가.

“피하고 싶어서 고심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책임감은 있는 사람이니까 해야 할 일이라면 하자 마음먹었죠.”

자연대, 의대, 약대가 경합에 나선 상황이었다. 그간의 지원정책 방향으로 보아 의대와 약대가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그 분야와의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차별의 핵심은 신경생물학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 연구사업제안서를 작성하는 데 다섯 명의 관련 분야 학자들이 합세했고, 김경진 교수는 그들의 열성 때문에 제안서가 뽑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뇌 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사업단’의 연구는 뇌기능의 분자세포 생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뇌질환 진단, 치료 및 예방에 응용할 기초기술 및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며, 기술개발시 보건의료 생명공학 분야의 중요성을 포괄하는 전략적 사업이다. 이제 2013년까지 10년간 매년 1백억 원씩 지원할 임무의 총책임이 그에게 맡겨졌고, 그에 따라 곧 세부연구과제와 인력을 선정하게 된다.

어느 분야의 누구에게 투자해야 기대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 김경진 교수는 연구자들을 그들의 연구실로 찾아가 만난다. 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 뇌과학계의 미래를 매우 밝게 내다본다.

“미국 듀크대 경영학 교수 리처드 올리버는 〈다가오는 제4의 물결-BT의 혁명〉에서 ‘산업시대에는 공간을 정복했고, 정보시대에는 시간을 정복했으며, BT시대에는 물질을 정복할 것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BT(Bio Technology, 생명과학)의 핵심이 신경과학이죠. 우리나라는 뇌연구 분야에 국가 연구비가 지원된 이래 논문 수가 38% 늘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1~2% 증가한 것에 비하면 대단한 성장 속도 아닙니까. 또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수한 인력들이 속속 돌아와 연구 인력도 채워질 것이고. 이 분야에서 걸출한 과학자가 나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이 요즘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 그것도 특정한 과로만 몰리고 있어 문제입니다. 사회적 대우와 수입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정말 현실적인 판단을 한다면 곧 포화 상태에 이를 의대를 기피하고 수의대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전망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 학부에 우수한 학생들을 오게 하려면 먼저 우리 사회가 미래와 잠재력을 우선시하는 풍토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30년 전, 그가 동물학 전공을 택했을 때 누가 30년 뒤에 생명과학 세상이 올 줄 알았겠나. 당시 그는 한 인척으로부터 미국에서 생물학 분야가 비전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는데, 그럼에도 졸업 때까지 입학 동기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가슴에 새긴 오랜 다짐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밝혀라.’

군 복무 시절, 비무장지대에서 힘겨운 군대생활을 하면서 그가 가슴에 새기고 새긴 말이다. 환경을 탓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도전하는 자세가 상황의 반전을 가져온다는 믿음이다. 교수로서 과학자로서 살아온 지난 18년 동안 그의 가슴엔 늘 이 말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구실 책장 유리문에는 그가 오래 전에 오려놓은 신문기사가 붙어 있다. 1997년 3월 4일자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본 20세기 초 한국풍경’이란 연재기사이고, ‘초가삼간일지라도 기개는 당당’이라고 제목이 뽑혀 있다. 그리고 초가의 작은 방에서 한 선비가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그림. 이 소박한 그림이 그의 마음에 꼭 들었던가 보다. 6년이 지나도록 고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정한 길을 초연히 가는 선비의 모습을 자신에게 새기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발견하고 싶은 마음 또한 클 것이다.

김경진 교수가 최근 주력하고 있는 연구는 신경내분비계의 이해에 집중되어 있다. 뇌 시상하부의 신경내분비계 조절 기능과 자율신경계 통합 조절 기능, 행동 제어 기능의 메커니즘 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이다. 이처럼 신경내분비계의 기작을 밝히는 연구는 신약 개발을 위한 1단계 작업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그동안 뇌신경생물학사업단 부단장이자 바이오벤처의 CEO를 겸해 온 그는 기초 연구와 산업적 실용화가 효율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는 암젠이라는 유명한 바이오 회사의 예를 들었다. 1998년에 암포젠이라는 신약을 개발한 암젠 사는 약을 출시한 그 해에만 14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의 고든 바이어 사장이 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회사처럼 특정 질환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과학이 뒤따라가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낼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찾아 집중 투자하여 이를 산업화함으로써 신약을 개발한다.’ 뇌질환은 무척 많지 않습니까. 그 질환 하나하나를 따라가지 않고 거기에 관련된 생물학적인 기전, 예를 들면 세포의 죽음, 신경세포, 신호전달 기작, 이런 근본적인 것을 연구함으로써 신약 개발의 표적을 찾는다는 정신에 나는 찬성합니다.”

신경계 관련 신약은 부가가치가 매우 크다. 암 치료제 같은 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현재 개발된 약이 매우 적고, 이 약들의 효과도 그다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경계가 신약 개발의 보고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경계 기작에 관한 연구도, 신약 개발도 매우 어려운 일인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든다. 그리고 그 모든 난관을 돌파하며 연구에 몰두할 뛰어난 과학자가 필요하다.

“그래도 길게 보고 해야죠.”

어둠을 탓하지 않고 촛불을 밝히는 그가 아니던가.







피카소의 그림처럼

그는 세 명의 여자와 신촌의 한 아파트에 산다.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부인 정영순 교수의 학교가 이화여대여서 신촌에 집을 구했다 한다. 서울대까지는 한강을 건너 한참 거리인데 한 사람이라도 직장이 가까운 것이 좋지 않겠냐 하는 생각에서다. 늘 밤늦게까지 일하는 아버지들이 그렇듯, 그도 주말이면 두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로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하는데, 아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자신은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고,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외에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연구실을 나서는데 출입문 쪽 벽에 걸린 피카소의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새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고 있고 새의 주변엔 작은 꽃송이들이 날리고 있다. 단순한 형태에 담긴 유쾌하고도 함량 높은 메시지가 가슴으로 푸드득 하고 날아드는 느낌이다. 과학자 김경진의 연구실에서 그 새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날개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방은진 jeena@powerbrain.co.kr   사진│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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