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왜 이타적인가, 이타적 뇌를 선택하라

마인드 & 브레인

브레인 8호
2010년 12월 23일 (목) 01:27
조회수20572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하냐’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을 배려해봐야 사회생활에서는 손해일 뿐이라는 생각도 그렇다. 우리는 일을 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 끊임없이 이게 손해냐 이득이냐를 따지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에 대한 대답은 뻔해 보인다. 하지만 예술과 철학, 인류학, 진화론, 수학 등 모든 분야에서 학자들의 끊임없는 숙제였던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최근 뇌과학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리되면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타주의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들을 통해 인간의 이타주의에 관한 생각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보자.









●뇌에게는 주는 것이 곧 받는 것
물건을 사고 길을 묻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은 타인의 보답과 친절이 반드시 있을 거란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원숭이들이라면 발작을 일으켰을 만원버스가 인간 사회에서는 태연스레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것도 작은 양보 덕분이다. 불우이웃돕기에 거액의 성금을 내거나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직접적 행동만이 이타적 행위가 아니다. 이타적 행위는 보이지 않게 모든 거래와 관계의 기본이 되고 개인과 사회를 지탱하는 두뇌의 활동이기도 하다.

이타주의가 이기적인 충동을 이겨내는 의식과 문화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언어는 다르지만 언어 능력 자체는 인간의 본능이듯, 이타주의 또한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는 본능이다. 뇌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이타주의와 도덕은 고등적인 사고라기보다 분노와 기쁨처럼 원초적인 것에 더 가깝다. 기부나 좋은 일을 하면 활동이 많아지는 뇌 속의 미상핵(caudate nucleus)과 측좌핵(neucleus accumbens)은 식사나 섹스를 할 때 기쁨을 느끼게 하는 등의 기초적인 욕구나 보상작용과 관련된 곳이다. 자신이 선행을 하거나 타인의 선행을 보는 경우, 비자발적이라도 좋은 곳에 쓰이는 기부금이나 세금을 내는 등의 이타적인 모든 경우에 인간의 뇌는 이들 감정적인 보상회로를 뜨겁게 달군다. 우리의 뇌에는 이타주의적인 욕구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타주의가 공감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기가 느끼는 것과 구분하지 못한다. 두 살 정도가 되어야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두 살 반쯤 되면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우는 친구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주며 달랠 줄 알게 된다. 이러한 행동은 부모들의 가르침에 의해 강화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간 두뇌의 기본 설계에 의한 것이다. 올해 초 미국의 듀크 대학 연구팀은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공감보다도 더 기초적으로 다른 사물의 의도와 행동을 파악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후측두엽의 위쪽피질(posterior superior temporal cortex)이 이타주의와 관계 깊은 영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투에서는 지지만 전쟁에서는 이기기 위한 두뇌회로
이처럼 두뇌의 기초적인 기능이자 본능인 이타주의가 어떻게 삭막한 경쟁과 도태의 이기적 세계에서 살아남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기 때문이다. 이타주의로 똘똘 뭉친 무리는 다른 무리들과 싸우거나 먹이를 찾는 데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타주의가 단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배신을 선호하는 이기주의자들과 이타주의자들이 경쟁할 때를 생각하면 당연히 이기주의자들이 이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서도 쓰이고 있는 ‘게임이론’은 배신과 협력을 하는 경쟁자들 간의 갈등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이론인데, 이타주의가 전투에서는 질 수 있지만 전쟁에서는 이기는 효과적인 전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한 번만 볼 것 같은 사이라면 이기적인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뜨내기가 많은 역 근처 식당은 맛없는 음식으로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인근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라면 맛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계속 거래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 노력과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 식당처럼 근시안적인 이기주의자 대신  바보처럼 보이는 이타주의자가 결국엔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게임이론이 보여준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반영한 회로를 갖추고 있다. 인간은 서로 만나면 잘 웃고 호의를 베풀며 대화를 하는 습성이 있다. 함께 술자리를 같이하며 뭉치자고 외치는 이상한 습관도 이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적대적인 배신행위에도 민감하다. 회사에서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관례나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잘리거나 따돌림을 당한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단지 30분간의 대화만으로도 배신을 할 것 같은 사람들을 가려냈다.

에른스트 페르Ernst Fehr를 비롯한 스위스 취리히 대학 연구팀은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타인에게 처벌을 가할 때 기쁨과 만족의 두뇌회로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동물에게는 볼 수 없는 인간만의 복수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배신자와 규칙 위반자에 대한 처벌이 없이 대화만으로도 이타주의에 도달한 많은 실험들이 있었다. 그러나 처벌과 토론, 자발적인 협력이 함께 할 때 이론상 최대 이득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인간만의 이타주의
인간의 이타주의는 단지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기주의의 다른 모습일까? 진화의 과정과 결과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동물과는 조금 다르다. 동물들은 단지 이익이 되는 한정된 대상과 두뇌에 각인된 한도에서만 협력한다. 이타주의가 상당히 발달한 침팬지도 집단 내의 서열과 경쟁에 유리할 때, 요청을 받을 때만 음식을 나누어준다. 물론 인간도 이익을 생각하고 이타주의를 발휘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을 훨씬 뛰어넘어 노동의 분업과 전문화, 거래와 선물로 이타주의를 극대화한다.

결정적으로 인간의 뇌는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서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베푸는 행위는 계산에 의한 수동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스스로 희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선물을 받으면 답례를 당연시한다. 주지 않고 받기만 하면 불편해하는 것은 이득의 계산보다 남에게 주고 싶고, 줘야 한다는 ‘감정’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뇌물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이러한 감정의 부작용이다. 또 자발적으로 타인과 음식을 나누는 식사는 사회적 관계의 기본이고 나누지 않는 소유의 독점에 대해서는 적개심마저 가진다. 남을 참견하고 불의에 분개한다. 인간은 이러한 도덕적 감정에 더해 고도의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동물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범위의 공감이 가능해졌다. 가족과 부족을 넘어서 민족, 국가, 인류에까지 공감의 범위가 높아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이타주의는 비록 동물의 이타주의를 뛰어넘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다. 2007년에 경제학자로서는 국내 최초로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실은 경북대 경제학과 최정규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외부인에 대해 적대적인 이타주의로 진화해왔다. 모순되게도, 치열한 경쟁과 배타성이 이타주의를 만든 것이다. 분쟁과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학연과 지연 중심주의, 국수주의가 뿌리 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변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범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한 것도 인간이 친족 중심, 이익교환의 호혜주의互惠主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에 대해서도 적대적이다. 특히 소유권이 불분명한 생명들일수록 쉽게 파괴해왔다. 흔히 원시부족들을 환경친화적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우리 조상들은 매머드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지구상에 사라지게 만든 주범이었다. 이런 습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전 지구적인 파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이기주의에 가깝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이기주의자는 늘어나 모두가 패배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제학과 게임이론 실험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모두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중 어떤 정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뇌와 행동이 변화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가져오듯 각자가 어떤 정보에 힘을 싣느냐에 따라 세계가 변화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타주의를 선택하면서도 그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뛰어넘으려는 노력이다. 어릴 때부터 공감과 감정처리를 학습으로 강화시키는 것, 주변에 순응적인 인간 인지의 특성을 고려해 전반적인 사회의 정보와 행동을 향상시키는 것, 개방적이면서도 결속력이 강하며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지구인으로서의 의식을 뇌 속에 담는 것. 이처럼 이타적인 뇌와 세계를 만드는 모든 노력이 바로 우리 모두가 최후의 승리로 향하는 방법이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도움 받은 책·《이타적 유전자》(매트 리들리 저, 사이언스 북스)
《이타적 인간의 출현》(최정규 저, 뿌리와 이파리)??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