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각의 발로(發露)는 발로부터, 생각의 말로(末路)는 말로만

유영만의 생각임신 - 01

《어린 왕자》에 보면 지리학자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난 탐험가가 아니거든. 나는 탐험가와는 거리가 멀단다.
지리학자는 도시나 강과 산, 바다와 태양과 사막을 돌아다니지 않아.
지리학자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 한가로이 돌아다닐 수 없지.
서재를 떠날 수가 없어.
서재에서 탐험가들을 만나는 거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여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거야.
탐험가의 기억 중에 매우 흥미로운 게 있으면
지리학자는 그 사람이 정말 성실한 사람인지 어떤지를 조사한단다.”

지리를 발로 뛰면서 몸으로 익히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관념적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글이다. 지리를 알려면 이리저리 구석구석 다녀봐야 한다. 지리학자가 지리학 책을 보면서 요리조리 생각만 굴려서는 지리의 본질과 핵심을 파악할 수 없다. 지리학을 공부하는 학자가 지리를 잘 모른다는 《어린 왕자》의 비판이 단지 지리학자만의 문제일까?

교육학자가 교육현장을 발로 뛰면서 현장의 아픔을 이해하지 않고 창백한 연구실에서 논리적으로 공부만 한다. 경영학자가 경영현장의 아픔을 몸으로 이해하지 않고 학문적 논리로 현장을 재단한다. 경제학자가 경제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경제현실을 파악하지 않고 경제적 통계와 지표를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생각만 하고 고민만 한다. 지리에 ‘학(學)’이 붙어 ‘지리학’이 되고, 경영에 ‘학(學)’이 붙어 ‘경영학’이 탄생하며, 교육에 ‘학(學)’이 붙어 ‘교육학’이 탄생하고, 경제에 ‘학(學)’이 붙어 ‘경제학’이 되면서 지리와 경영, 그리고 교육현장 및 경제현실과 거리가 먼 이론(理論)이 양산되면서 현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상한 논리, 이론(異論)이 탄생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학’을 떼는 경우가 많다. 공부는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며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는 가운데 점차 완성되는 과정이다. 체험적 느낌 없이 차가운 논리의 세계에 빠지면 빠질수록 현장의 현실이 말해주는 진실을 이해하기보다 은폐 또는 왜곡하는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내 몸을 움직여 적용해보고 체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나의 생각이나 주장으로 체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도 읽어야 되지만 읽은 책을 소화시키기 위해 산책도 해야 한다. 머리로 읽은 책을 실제로 느껴보고 무슨 의미인지를 반추해보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 실행해봐야 한다. 몸을 움직여 체험해보는 가운데 남다른 느낌과 깨달음이 다가올 때 생각지도 못한 생각이 탄생하는 법이다. 

위대한 철학도 걷기에서 자신의 철학을 정립했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걷기예찬(Eloge de la marche)》이라는 책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의 말이다.

걸으면서 자신과 대화하고 주변 사물과 대화하면 놀랍게도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내 목소리가 들리고 사물이 말을 걸어온다. 화가 치밀어오를 때, 분노가 풀리지 않을 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일단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자. 걸으면 몸이 움직이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몸이 쉬고 있으면 마음이 바쁘고,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쉰다. 걷는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으로 하여금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걷다 보면 생각이 열리고 고민이 해결되며 분노가 가라앉는다. ‘생각의 발로(發露)’는 ‘발로부터’ 열린다.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맨발로 달리기를 시킨다고 한다. 발바닥을 자극하면 뇌세포가 활성화돼 집중력도 늘어나고 공부도 더 잘된다는 것이다. 생각의 발로와 다르게 생각의 말로(末路)는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않을 때 다가온다. 말로만 하지 말고 손발을 움직여 이리저리 실천할 때 비로서 생각의 발로가 열린다.

걸으면 길이 열리고 생각이 트이며 마음도 새로워진다. ‘1온스의 실천이 1파운드의 관념보다 가치 있다(One piece of practice is worth a pound of percept)’는 말이 있다.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 생각만 하면 이루어지는 일도 없을 뿐 아니라 기존 생각을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복잡한 생각보다 단순한 행동이지만 진지한 실천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변화가 시작된다. 세상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진지하게 실천해나가는 우직한 사람이 바꾸어간다. 머리로 생각만 하는 사람은 실천하기 전에 보다 쉬운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실천하기 어려운 자기합리화가 시작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핑계를 생각하며, 결과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책상에 앉아서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면서 시행착오 끝에 깨달음과 교훈을 얻는 사람이다. 영어의 알파벳은 a로 시작한다. 왜 a로 시작하는가. a는 action, 즉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글.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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