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과 정글북

윤한주의 공감세상

2016년 07월 07일 (목)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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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글북' 스틸컷

“누가 뭐라해도 넌 내 소중한 아들이야”

<정글북(Jungle Book)>에서 엄마늑대 락샤가 ‘모글리’에게 한 말입니다. 호랑이 쉬어칸에게 늑대집단이 짓밟혀도 락샤의 모글리에 대한 사랑은 각별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덕분인가요? 모글리 또한 포기를 모릅니다.

쉬어칸에게 쫓겨서 도망자 신세가 된 모글리. 그는 바기라(흑표범)과 발루(곰)의 도움을 받습니다. 반면 카아(구렁이)와 루이(오랑우탄) 등의 위협도 만나게 되지요. 이들은 “절대 해치지 않겠다.” “너를 지켜주겠다”라며 모글리를 유혹합니다. 그럼에도 용케 벗어납니다. 마침내 홀로 만난 쉬어칸과의 대결에서도 그만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레전드 오브 타잔(Legend of Tarzan)>에는 고릴라 엄마가 나옵니다. 어린 '타잔'을 다른 새끼처럼 품에서 키웠지요. 덕분에 타잔은 혼자가 아닙니다. 동물과 소통하면서 자유롭게 지냅니다. 코끼리의 눈은 위대한 언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동물에 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반면 타잔을 넘기고 다이아몬드를 차지하려는 인간들은 욕망에 눈이 어둡습니다. 이들의 탐욕에 맞선 타잔의 질주가 거침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영화 <아바타(Avatar)>가 아니더라도 줄곧 제기된 주제이기도 합니다.

주목되는 것은 동물 엄마들이 보여준 모성애가 인간 못지않다는 것이죠. 실제는 어떨까요? 원숭이는 중국 고사에 나옵니다.

동진(東晉)의 군주 환온(桓溫)이 촉(蜀)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이끌고 배를 타고 양자강을 따라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환온의 병사 한 명이 우연히 마주친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배에 태우고 갔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배를 쫓아서 수백 리를 따라왔습니다. 배가 강기슭에 도착하고 어미 원숭이도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새끼를 품에 안지도 못하고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왜 죽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배를 갈라 봤더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빼앗긴 슬픔이 너무 애통해 창자가 끊어졌다는 얘기에서 단장(斷腸)이란 말이 유래됐습니다.

▲ 영화 '타잔' 포스터

김상운 MBC 기자는 <왓칭(정신세계사)>에서 토끼 실험을 소개합니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어미 토끼를 새끼들과 떼어놓습니다. 두뇌에 전극을 삽입합니다.

새끼들은 잠수함에 태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북대서양 심해로 데려가서 한 마리씩 죽였습니다. 새끼들이 죽임을 당할 때마다 어미 토끼의 뇌파는 크게 치솟았다고 합니다.

어미 토끼는 어떻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새끼의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비록 태어나면서 생명의 탯줄이 끊어졌지만 정신적 탯줄이 계속해서 연결된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연결이 부재하다고 느낀다면 가족 또한 남이 되고 심지어 적이 됩니다. 매년 발생하는 아동학대, 노인학대, 존속살해 등이 대표적입니다. 남이 아니라 혈육 간에 일어난 비극이죠.

이러한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일부 가족의 문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가족폭력이 학교폭력을 낳고 사회폭력으로 확산됩니다. 이웃 간에도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달 전부터 살인계획을 세울 정도로 무서운 세상입니다.

인성(人性)이 무너지는 세상에서 로봇이나 인공지능 등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5분 배꼽힐링(한문화)>에서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연지능 회복을 강조합니다. 탯줄의 흔적인 배꼽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죠. 어머니와 연결됐던 자리. 거기서 최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구 어머니와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는 대지와 하늘이 우리를 부모처럼 먹여 살린다는 동학의 <천지부모론(天地父母論)>과 같습니다. 부모를 대하듯이 만물을 고맙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정글북>과 <레전드 오브 타잔>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력은 놀랍습니다. 수십여 종의 동물과 식물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입니다. 이러한 창조력은 동물과 달리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죠. 그러한 창조성이 인성을 회복하고 지구를 살리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울 때, 밥을 주는 늑대가 이긴다는 인디언의 속담처럼.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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