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인문학] 아이들을 신뢰할 수 있는 용기

브레인 인문학

브레인 88호
2021년 06월 30일 (수)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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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생활 반경이 줄어들다 보니 예전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에는 ‘이 코로나가 언제쯤 끝나나’ 하는 답답함에 뒤적거리다가 지금은 습관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지경이 됐다. 문득 숨이 막히도록 답답해지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볼 창이 이 조그만 화면밖에 없나 하는 생각에…. 작은 화면에 비친 세상은 온통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하다.

세상은 정말 망해가고 있는 것일까?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와 함께 사실에 근거한 낙관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한스 로슬링과 그 아들 올라 로슬링이 전 세계 30개국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전반적으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또는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모든 나라에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답했다.

2018년에 출간된 《팩트풀니스: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에서 저자인 로슬링 부자는 방대한 데이터와 통계를 활용해 빈곤, 전쟁, 아동보건, 기근, 자연재해, 성평등 등의 문제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자료들은 세계보건기구, 유네스코, 유엔환경계획 등 유엔 산하 전문 기구들에서 제공한 공식 데이터다.

로슬링 부자가 설립한 갭마인더재단 홈페이지에 가면 세계의 현황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설문조사가 있다. 이 질문들은 세계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사실이 아닌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음을 성찰하게 하는 도구들이다. 이들이 실험한 바에 의하면 인간의 평균 정답률은 16%로 글을 몰라 무작위로 때려 맞춘 침팬지보다 낮았다고 한다. 침팬지의 정답률은 33%였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말해주는 데이터들

테드TED의 한 강연에서 올라 로슬링은 세상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는 정보의 근원을 세 가지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 변화하는 세계를 따라잡지 못하는 학교 교육,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를 선호하는 미디어. 이렇게 들어오는 정보들이 우리 뇌의 진화적 특성과 결합되면서 부정적 편향성을 띄게 된다.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데이터와 통계에 입각한 낙관주의를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로 확장한다. 최근 저서 《휴먼카인드》에서 그는 방대한 역사적 자료와 심리학, 진화생물학, 인류학, 철학의 분야를 넘나들며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냉소적 프레임을 뒤집는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와는 달리 ‘이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쯤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브레흐만은 미디어로는 드러나지 않던 수많은 재난 현장의 연구 결과들을 통해 보여준다. 제1·2차 세계대전, 타이타닉호 침몰,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수많은 극한의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은 어김없이 죽음을 불사하며 타인과 약자들을 도왔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용기가 있는가?

그럼에도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불신과 불안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듯하다. 그중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장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관계다.

요즘 군대에서는 일선 지휘관들이 ‘군부모(학부모에 대응하는, 병사들의 부모)’들의 잦은 민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지난해 7월부터 전 부대의 장병들에게 휴대폰 사용이 허가되면서 ‘우리 아들 체온 재고 처방약도 알려 달라’, ‘우리 아들 사진이 이상하니 다시 찍어 보내 달라’, ‘애 피부가 민감하다. PX 화장품을 늘려 달라’ 같은 황당한 민원들이 군부모들로부터 쇄도한다고.

지금 20대 성인이 된 이들이 부모에게 이토록 의존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기도 전부터 숙제, 운동, 음악, 과외 등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채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모르는 곳을 탐험해본 적이 없고, 학교에서 코딩 학원으로 줄넘기 학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공중부양족’으로 자랐다.

《휴먼카인드》에 재미있는 설문조사가 실려 있다. 10개국 부모 1만2000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대부분의 아이가 교도소의 수감자들보다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짧았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용기가 있는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 안의 가장 위대한 장점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나갈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 어른들은 믿고 있을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서 창조가 일어난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네덜란드의 대안학교 ‘아고라’를 소개한다. 이곳은 비구조화된 교육 환경 속에서 연령, 능력, 수준이 다른 아이들이 서로 뒤섞여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 알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습득하는 학습이 이뤄진다고 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개인의 목표를 설정하고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코치의 역할을 한다.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한국에도 아이들에게 입시 부담을 줄이고 자신의 진로를 자유롭게 탐색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자유학년제가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학교의 틀 안에서는 그저 다음 학년의 학습을 준비하는 선행학습 시간 정도로밖에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2014년 개교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는 완전 자유학년제를 표방하고 있다. 전통적 교육의 학교 건물, 교과목, 교과 교사, 시험, 성적표가 없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으로 이 사회와 인류에 기여할 것인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스스로 배움의 여정을 만들어간다. 이 학교 설립자인 글로벌사이버대 이승헌 총장은 “벤자민학교에서는 배우기에 앞서 ‘발견’하게 한다. 자신의 가치를 찾게 한다. 창조하고자 하는 열망,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면 거기서부터 창조가 일어난다”고 벤자민학교의 고유한 창의성 함양 교육 철학을 설명했다.

인간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의 문제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다. 선하다고 믿으면 그렇게 행동하게 되고, 악하다고 믿으면 자신과 타인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인류의 미래가 서로 배려하고 돕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 미래의 주인이 될 아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용기가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글. 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 jkim618@gmail.com


* 테드 강연 ‘How not be ignorant about the world’

https://www.ted.com/talks/hans_and_ola_rosling_how_not_to_be_ignorant_about_the_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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