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 화면 속에서 눈길을 끄는 썸네일을 발견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컵라면’과 ‘햇반’ 같은 간편식 몇 가지를 재료로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10분가량의 동영상이었다. 이미 조회 수가 5백만 회를 넘어선 가운데 이 가게는 ‘노포 맛집’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알고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레시피인데 사람들은 왜 이러한 시도에 열광하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인스턴트 음식을 다루는 방식과 차이점이 있었다. 나는 라면의 맛은 봉지에 제시된 레시피를 얼마나 잘 준수하는가에 달렸다고 믿는다. 지난 휴일 점심에 라면을 끓이면서 2개 분량의 물을 눈대중으로 붓다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에게 물었다. “물 이만큼이면 되겠지?” 아이는 “1리터 부으면 될 텐데. 물량은 정확히 붓는 게 좋아요” 한다. 나는 냄비의 물을 화분에 쏟고, 계량컵으로 1리터를 받아 다시 냄비에 부었다.
▲ 개그우먼 이국주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선보인 '컵라면 볶음밥' (사진. 이국주 유튜브)
사적 영역인 개인의 부엌에서 대형 회사의 제안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레시피 준수는 ‘라면은 라면답게’가 좋은 것이라는 데 대한 암묵적인 동의와 기업의 이윤추구와 직결되는 실험과 기술이 그 ‘답게’를 보장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라면을 예로 들어 생각해본 것이지만,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이러한 표준화 정도가 강해지고, 표준화의 효율성과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는 좀처럼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영상 속 ‘컵라면볶음밥’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의심하지 않고 열심히 준수해온 어떤 규칙을 해체하는 모습에서 소박한 ‘아하’ 경험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컵라면과 볶음밥의 굳건한 경계를 해체하는 신선함은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부족의 삶에서 발견한 ‘브리꼴레르Bricoleur’, 즉 ‘손재주꾼’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상황에서 매뉴얼대로 제작하는 사람이 기술자라면, 손재주꾼은 상황에 맞춰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돌이켜보면, 원래 우리 부엌의 손재주꾼들은 눈대중으로 모든 음식을 척척 해냈다. 불이 센 것 같으면 약간 줄이고, 밥물이 많은 것 같으면 한 술 덜어내는 식으로 요리과정 내내 이루어지는 사소한 보살핌은 야단스럽지 않게 슬며시 이루어지기에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조차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한 사람의 몸에 아로새겨진 총체적 경험이 곧 기술이고 전략이니 일회적인 말이나 보는 것으로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다. 똑같은 맛을 구현하기 어려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옛말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습관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습관이란 의식적인 뇌(전전두피질)가 거의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자동적 행위이다. 이렇게 익숙한 행위는 뇌의 다른 복잡한 신경망과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손재주꾼의 지식은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부단한 체험을 통해 형성해야 할 일종의 몸의 습관, 생각의 습관이다.
경계를 해체하거나 가로지르는 습관은 주변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관찰 없이 형성되기도 발휘되기도 어렵다. 일상 속에서 손재주꾼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소소한 경계 해체를 시도하며, ‘재미있게’ 내 몸과 마음의 빗장을 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좋은 습관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나브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글_권효숙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교수. 한국교육인류학회 학술지 편집위원장.
《다문화교육의 지형》, 《문화 간 적응교육》 등의 책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