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북스]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 자폐인이 보는 세상은 어떻게 다른가? (이미지 출처=YES24)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활짝 열어 보인 한 자폐 지성인의 증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엔 너무 멍청하다고 여겨지던 아이, 늘 백치나 지적장애인 취급을 받던 청소년, 왕따를 당하고 친구들에게 자주 맞아 학교 가기 싫어했던 아이, 간단한 인사를 하거나 카페에 들어가는 일도 버거워하고 빵을 사거나 전화 통화 같은 사소한 일로도 불안해하던 그 청년.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바칼로레아(프랑스의 ‘수능’)를 통과하고, 고대 문명에 심취하여 독학으로 10개 언어를 배웠으며(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아마르어, 아제르바이잔어, 에티오피아어, 체코슬로바키아어, 독일어, 핀란드어, 영어), 프랑스 명문대 시앙스 포(Sciences Po, 파리정치대학) 졸업 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남자. 이 둘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회적 능력에는 매우 서툴다. 지하철을 타거나 약속 장소에 가기 전에 여전히 험난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고, 전화벨이 울릴 때 공황장애 비슷한 것을 경험한다. 지나가며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 공놀이를 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왜 축구라는 게임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평소 겪는 불안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바칼로레아 구술시험’을 앞두고,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큰 짐을 안고 살아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조리 있게 감(感)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사회적 맥락 파악에도 더디다. 기차 검표원이 승객에게 다가와 이렇게 묻는다. “당신 표를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자폐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오, 당신은 표를 볼 수 없습니다. 그 표는 내 주머니 안에 있으니까요.” 자폐를 지닌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자폐를 지닌 어린이는 대체로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더욱 부족하다. 취업 면접 시 미래의 직장 상사 앞에서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여기 냄새가 참 고약하네요!” (거짓말을 못 하는 것이다.) 

자폐인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제기된 문제 또는 주어진 상황의 모든 측면을 생각한다. 만약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의 모든 단계를 계획한다. 여행 가방을 어떤 날에 준비해야 할지 알아야 하고, 가져가야 할 물건 목록뿐 아니라 그 물건들을 어떤 순서로 가방에 넣을지도 미리 생각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각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파리의 한 식당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자기에게 익숙한 장소라고 해도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맨 끝에야 식당 건물 앞에 도착한다. 그러고서 이렇게 생각한다. ‘저기에 들어갈까 말까? 어느 순간에 문을 밀고 들어가야 할까? 식당에 10시에 오라고 했는데, 식당 앞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홀을 말하는 걸까? 5분 전에 도착해도 되나? 5분 후에 도착해도 되나? 그 두 경우에 사람들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걸까? 그러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결국, 우리가 각자 독특하고 소중한 존재인 이유 

그는 자신이 세상의 어떤 틀에도 들어맞지 않음을 발견한다. 어찌 보면 서글프고 심각한 이야기들인데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열어보인다. 지금까지 가족이나 전문가, 제3의 관찰자 입장에서 자폐인을 기록한 글은 제법 있었지만 자폐인이 인식하는 세계에 대해 자폐인이 직접 기술한 생활 속 이야기는 처음이다. 

재치와 우아함, 용기, 적절한 거리감과 유머, 소양이 가득 담긴 특별한 모험담으로 자신의 자폐증상을 정리한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엇이며, 평소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능력이 정말 그렇게 인정받을 만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자폐를 지녔든 아니든(아니면 특정한 약점이 있든 아니든) 우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과 인간 됨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같은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도 자폐인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비자폐인과 사뭇 다르다. 가령 할리우드 배우 부부에 관한 글을 읽고 난 후 저자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떤 언어의 문법적 특징은 훨씬 쉽게 기억한다.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일부 자폐인은 천재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갈망을 극대화한 드문 사례라고 본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특수한 관심사를 마음껏 파고들 자유가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진 덕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자폐인’이라고 하지 않고 ‘자폐증을 지닌 사람’으로 표현한다. 여행 가방을 지니고 다니듯 그다음 날에 자폐증을 집에다 놔둘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어떻든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가 ‘지닌’ 자폐증은 그가 10개국어를 하고, 신장이 195센티미터이며, 체코 출신 프랑스인이라는 것과 같은 여러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른 세계에 산다. 

글. 이지은 기자 smile20222@gmail.com | 사진 및 자료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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