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

플라시보 효과와 뇌의 치유 능력

브레인 23호
2010년 12월 23일 (목) 16:00
조회수15778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뇌의 자연 치유 능력

17세기 서양 의학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네덜란드의 안톤 반 리벤후크가 현미경을 발명했고, 이를 이용해 질병의 생물학적 본질을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다. 질병의 과학적인 근거가 규명되자 치료의 효력이 관찰되고 측정될 수 있었다.

의사들은 약품 보관함을 샅샅이 살펴보고 갖가지 묘약과 향유들 중에서 어떤 것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각각의 과학적 효능을 테스트해본 결과 그들의 ‘치료제’는 대부분 약리학적으로 전혀 효능이 없거나, 심지어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밝혀졌다.

치료 효능이 없음에도 분명히 유효한 작용이 ‘있다’고 증명된 약들이 오래도록 민간 치료제 역할을 했다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최초의 활성성분으로 입증된 기나수 나무껍질은 페루 인디언들 사이에 말라리아성 열병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찰스 2세와 루이 14세를 치료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이는 치료제로서 아무 소용없다고 판명되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던 치료법들에 대해 과연 과학자들은 어떻게 해명해야 했을까?

그 현상은 라틴어로 ‘기쁘게 해줄 것이다’라는 의미의 ‘플라시보 효과’로 명명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의학은 이 현상을 없애버리거나 피해야 할 해로운 존재로 간주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혁신적인 뇌 영상 기술과 정교한 이중맹검학(신약 효과의 검사법)의 조합 덕택에 과학자들은 플라시보 효과가 정말로 어떤 현상인지 연구하고 그 효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뇌의 자연 치유 능력의 활성화가 바로 그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의 위력

하버드 대학의 허버트 벤슨 박사는 플라시보(위약)가 질병에 대해 90%까지 이로운 결과를 보인다고 말한다. 임상 연구에 의하면 플라시보 처방은 우울증과 궤양 같은 질병에도 60%까지 효험이 있다고 한다.

사마귀가 난 환자에게 의사가 마치 약물을 처방하듯이  염색 물감을 바르고 ‘곧 사마귀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자 얼마 뒤에 정말 치료가 되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물론 염색 물감 자체는 아무런 의학적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또한 아리프칸 박사의 2008년 연구는 항우울제의 75%가 플라시보 효과로 인해 치료 효과를 본다는 점을 증명했다. 플라시보 처방으로 사람을 술에 취하게 할 수도 있고, 감기를 낫게 하거나 만성피로를 완화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 암 환자들에게도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장에 염증이 있는 것을 확인한 환자들의 절반 이상이 플라시보 처방을 받고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플라시보 효과는 그동안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현상이 아니다. 플라시보는 천식 환자에게 실제로 공기 통로를 열어줄 수 있으며, 우리 몸의 자연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라는 성분의 방출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플라시보 처방이 상처를 봉합하거나 감염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질병에 대한 우리 몸의 반응은 모두 뇌에서 조절된다. 플라시보는 뇌를 설득시킴으로써 우리 몸의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열과 통증과 부기는 우리 몸이 질병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으로 진화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열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몸의 온도를 높이고, 통증은 우리 몸의 어느 부위가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이 모든 자연적 반응들이 플라시보에 의해 경감되거나 증가될 수 있다.









단순한 믿음 그 이상의 것


플라시보의 효과는 무의식적 적용 여부에 크게 좌우된다. 여러 연구들은 의사 자신이 위약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 효과가 급격하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는 의사도 환자도 그 치료가 플라시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이중맹검법으로 행해진다. 플라시보 효과는 극도의 자신감 게임이다. 시행하는 의사나 환자는 모두 그 약을 믿고 효과를 신뢰해야만 한다.

환자에게 플라시보 처방을 할 때 그 약이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것이라고 귀띔해주면, 흔한 약이거나 저렴한 약이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를 얻는다.

또한 의사처럼 권위가 있는 사람이 플라시보 처방을 하는 것이 자동판매기에서 약물을 구입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것보다 효과적인 플라시보는 의사나 환자의 단순한 믿음 그 이상에 의존한다.

그것은 바로 ‘동정심’이라는 요인이다. 플라시보 처방이 ‘따뜻한 마음과 보살핌, 그리고 자신감’처럼 환자를 지극히 배려하는 환경에서 주어질 때 그 효과는 50%가 증가한다. 물론 그것과 정반대의 환경에서는 같은 수치로 감소한다.

환자가 분노나 미움, 억울함 같은 감정 상태에 있을 때는 어떤 특효약도 효능이 떨어질 수 있다. 마취된 환자들도 수술 도중 언급하는 의사들의 말에 신체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온정적이며 친밀한 태도, 공감 그리고 자신감 있는 소통’이라는 분위기에서 투약된 플라시보에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의 62%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캅척(Kapchuk 외, 2008).

이와 대조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섞지 않고 플라시보 처방을 했을 때는 오로지 44%의 환자가 반응했다. 더 큰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플라시보 처방이든 아니든 의사는 환자를 안심시키고 배려하는 개별화된 치료를 할 필요가 있다.


뇌가 효과적인 치료자가 되도록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일

플라시보 효과는 사실상 심리학과 생리학, 사회적 관계의 복합적인 조합이다. 잘산다는 것, 그리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플라시보 효과는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를 누가 보살피는지 아는 것, 그리고 긍정적인 희망을 갖는 것은 엄청난 건강상의 이득을 안겨준다. 그러나 인간이 뇌의 치유 능력에 접근하기 위해 항상 플라시보라는 속임수를 써야만 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MRI를 통해 각 개인은 통증에 반응하는 자신의 뇌 반응을 실시간으로 직접 볼 수 있다. 통증 반응을 직접 관찰한 환자들은 통증을 의식적으로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즉,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에 자연 진통제를 처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예비 단계의 연구는 올바른 도구와 적절한 사고방식을 갖추면 최소한 우리가 전에 플라시보 치료로 격하시켰던 몇몇 유익한 측면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뇌와 면역 시스템 간의 치료와 소통의 메커니즘은 너무도 복잡해서 뇌가 자연적으로 하는 일보다 더 나은 역할을 하려면 무척이나 힘이 들 것이다. 굳이 의식적인 집중을 하지 않아도 뇌가 우리의 폐를 숨 쉬게 하고 심장을 뛰게 통제하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억지로 집중할 필요 없이 우리 몸이 스스로 치료한다는 사실은 큰 혜택이다.

그러나 플라시보 효과가 입증하듯, 뇌가 효과적인 치료자로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 가짜 약 없이도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뇌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치유와 회복에 포함된 정신적 요인에 대해 더 많이 알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치유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글·앤디 헌터Andy Hunter 《Brain World》 기자
번역·안수정
cinemas87@gmail.com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와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