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리더를 만나다] 김재홍 “뇌교육 통해 뇌력을 키웠습니다”

브레인 Vol.78

[집중 리포트] 뇌교육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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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브레인 기자 |입력 2020년 01월 02일 (목)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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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리포트] 뇌교육이 뭐예요? 
[4차 산업혁명 시대, 뉴 리더를 만나다] 김재홍, UC버클리대학 재학 “뇌교육 통해 뇌력을 키웠습니다”


‘공부만 하고 어울릴 줄 모르는 한국 유학생?’의 장벽을 깬 학생이 있다. 고교 때 미국 세인트존스버리 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졸업 때 수학 공여상을 받고, 개교 170년 만에 아시아인 최초로 졸업 연설을 했 다. 졸업 후 UC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 중인 김재홍(27세) 씨가 그 주인공이다. 유학 가기 전 중학교 2학년 때 제3회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 한국 본선 대회에서 대상인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한 인재였다. 재미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수업 시간에 손을 들어 발표를 하거나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인 아이였다는 점이다. 뇌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된 후, 세상에 기여하고픈 꿈을 갖게 됐다는 김재홍 씨와의 인터뷰이다.  

Q. 한국 유학생을 바라보는 현지인의 시선은 어떤가.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놀 줄 모르고 한국인들끼리만 단합한다’고 생각한다. 고교 4학년 때 한국인 4명이 기숙사를 나와 홈스테이를 하면서 모두가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자고 뜻 을 모았다. ‘공부만 하고 우리끼리만 어울리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 않나.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조화로운 학교를 만드는 데 기여하자’라고 제안했다. 친구들이 ‘왜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하냐’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기꺼이 교류하며 즐겼다. 처음 한두 명에게 같이 게임을 하자며 초대했고, 누구나 오라고 개방하자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숙소에 와보면 벌써 30여 명이 먼저 찾아와 놀다가 고민 상담도 하고, 마치 카페 같았다. 집주인은 한국 학생들이 자기들끼리만 고립되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며 변화를 반가워하며 쿠키를 구워주시곤 했다. 학교 에서도 ‘한국 학생들도 어울릴 줄 알고 놀 줄 알더라’라며 우리를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남들이 다 안 된다는 일을 해내면서 ‘내가 행동하면 바뀌는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Q. 특별히 여러 나라 학생들과의 교류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 

세인트존스버리 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 중 80%는 인근에서 통학하는 백인이고, 20%는 기숙사에 머무는 아시아계, 스페인계 등 다양한 유학생들이다. 상호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았다. 오래된 풍습처럼 굳어져 학교에서도 묵인했다. 그 장벽과 분리가 마땅찮았다. 1학년 때는 언어 소통 문제로 어쩔 수 없었지만 4학년이 되자 ‘내가 이 학교를 떠나기 전에 반드시 이 장벽을 허물고 문화를 바꾸고 가야겠다’라고 결심했다. 앞으로 더 많은 난관과 시련을 겪을 텐데 고작 1000여 명 커뮤니티에서 그 정도 장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어떻게 국제적인 리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이었다. 무대포로 부딪혀서 끝내 장벽을 허물었다. 유학 온 이유 가 공부가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Q. UC버클리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여러 나라 학생과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었나. 

1학년 때 KUNA라는 한인 학생 동아리에 들어가 리더를 맡았다. 각 나라별 동아리 리더들과 연합해서 모임도 하고 봉사활동을 함께했다. 문화 교류 행사도 많이 주최했는데 삼일절, 개천 절에 행사를 열어 한국의 정신문화와 가치관을 전파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 UC버클리대 1학년 때 각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이벤트 행사를 주최했다. 떡꼬치 판매금을 기부하는 동시에 한국의 음식문화도 알린 문화 행사 모습.

Q. 말이나 생각이 모두 긍정적이고 밝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소심하고 찌질했다.(웃음) 남들과 싸 우진 않았지만 소통을 잘 못 해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웠고, 사소한 일에도 울곤 했다. 성적도 평범했다. 공부해야 할 동기부여도 없고 몰입하는 법을 몰랐다. 선생님은 내가 성격도, 성적도 평범한 아이라고 말씀하셨고 자식이 특별했으면 했던 어머니는 그 이야기에 실망하셨다. ‘BR뇌교육’이라는 아동·청소년 두뇌 계발 기관에서 뇌교육 수업을 받으면서부터 성격이 바뀌었다. 뇌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내 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성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점점 알게 되면서 내 안에 숨어 있는 가치와 자신감을 발 견했다. ‘남들 앞에서 위축될 필요가 없구나. 내 꿈을 펼치면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된다’라는 걸 알게 되면서 당당해졌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남들 앞에 서도 두려움이 없어졌다.” 

Q. 힘든 유학 시절을 어떻게 견뎠나. 

“처음에는 언어 장벽에 부딪혔다. 학원에 가지 않고도 영어 점수가 항상 100점이어서 유학 전 두 달 동안 준비했다. 그런데 미국에 가니 아무도 한국에서 배운대로 쓰지 않더라. 초기에는 수업 시간에 녹음 버튼을 누르고 기숙사에 와서 재생하면서 하나씩 끊어 뇌교육을 통해 습득한 브레인스크린을 띄우고 복습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 때문에 처음에는 남들이 1시간이면 할 수 있는 것을 6~7시간씩 투자해야 했다. 중학교 때까지 뇌교육을 받으면서 익힌 공부 습관, 체력 관리, 시간 관리 습관이 많은 도움이 됐다. 매일 정한 목표량을 끝내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졸릴 때는 푸시업을 했고 공부가 안 될 때는 명상을 했다. 명상을 하면 뇌도 맑아지고 목표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성적을 올렸다. 기숙사에서는 밤 10~11시면 모두 소등을 하고 꼭 확인했다. 룸메이트가 있다 보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전등을 켠 채 공부했다. 어느 정도 지나자 학습 속도도 빨라지고 성적도 향상됐다. 그렇게 공부할 때도 오후 3시면 수업이 끝나는데 5시까지 친구들과 농구나 야구를 즐기며 교류하는 시간도 잊지 않았다.” 

Q. 세인트존스버리 고교를 차석으로 졸업하면서 개교 170년 만에 아시아인으로서 첫 졸업 연설을 했다. 

“졸업 때 수학 공여상을 받았다. 졸업생 중 수학 실력뿐만 아니라 외부 대회 수상 경력, 수학 멘토링 참여 등 학교와 학생들에게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선정 관건이다. 수학 멘토링은 원래 없던 제도였는데 수학을 총괄하는 리더가 제안했다. 방과 후 30분씩 실력이 뒤처진 학생들을 도왔다. 또 캡스톤(Capstone, 머릿돌) 프로그램이라는, 졸업 전에 학교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그때 학교에 뇌교육을 활용한 명상 수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성화시켜놓고 졸업했다. 방과 후 함께 수련하고 마지막에는 몇 백 명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명상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5년, 10년 후를 명확히 떠올려 이뤄내는 비전명상을 체험시켜주었다. 선생님들이 최근 10년 동안 가장 좋은 프로젝트였다며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부터 ‘명상맨’으로 불렸다. 고교 과정을 거치며 느낀 점은 개인의 실력보다 학교와 다른 학생 등 전체를 위한 기여도가 평가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 김재홍 군(오른쪽)은 고교 졸업 당시 차석을 차지해 세인트존스버리 고등학교 170년 역사상 아시아인 최초로 졸업 연설을 했다.

Q. 명상은 지금도 자주 하나. 

“공부를 하거나 발표하기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고 5분 정도 명상을 하고 들어간다. 의식 상태를 0점에 놓으면 하고싶은 말, 원하는 것들, 하고싶은 집중력을 다 꺼낼 수 있다. 시험 칠 때 남들은 한 글자라도 더 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나는 빈손으로 가서 명상만 하고 내가 아는 것을 모두 꺼내놓고 나온다. 푸시업으로 체력 관리도 자주 한다.” 

Q. UC버클리대학으로 진학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스턴 칼리지, UCLA, UC버클리 등에 합격했다. 유학생을 1%만 받는 배타적인 곳도 있는데 최종적으로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의견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있는 UC버클리를 택했다. 고등학교를 나온 지역은 인종차별이 있어 장벽을 어느 정도 허물었지만 한계가 보였다. UC버클리는 좀 더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는 환경이고 경제학과가 유명했다.” 

Q. 예전에는 꿈이 의사였다고? 경제학으로 전환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 

“꿈과 비전이 명확하면 방법이 바뀌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비전이 있으면 한발 한발 그쪽으로 나아가게 되지만, 없다면 제자리걸음이 되어버린다. 의사가 되어 불치병 환자를 연구 해서 건강을 찾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견문을 넓히면서 이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 있는 국제적인 리더라는 측면에서 관심 분야였던 경제학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영재라고 하면 ‘공부를 잘한다. 머리가 비상하다’라고 말한다. 나는 올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에 환원할 수 있는 그런 영재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Q. 그런 결심을 한 이유가 있나. 

“미국에서 정말 많은 갑부와 부자의 자식들을 만났는데 그들 태반이 목표가 없었다. 있다 해도 ‘아버지 회사를 이어받는 것’ 정도였다. ‘왜 회사를 이어받고 싶냐? 이어받아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라고 물으면 대답을 못했다. 그냥 돈 많이 벌고 걱정 없이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거다. 그들은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뇌교육을 받는 후배들을 만나보면 꿈이 굉장히 소박하지만 그 꿈에 진심이 담겨 있다. ‘나는 공부를 못해. 하지만 나는 음악을 잘하니까 작곡하고 연주해서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람이 될 거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것이 훨씬 진정성있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런 인재를 길러내고 싶다. 자기가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분야를 살려서 이 세상에 환원하고 공유하면서 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인성영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Q.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낸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뇌교육에서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바로 목표의식이다. 국제적인 리더가 돼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홍익인간이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대한민국을 대 표해서 왔다’라는 마음가짐이었다. 유학 중 큰 꿈을 품은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좋은 성적을 받아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걱정 없이 잘살겠다는 정도였다. 큰 목표가 없으면 자신의 에너지를 10~20%밖에 내지 않는다. 눈앞에 닥친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내 목표는 단순히 당장 시험을 잘 치르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성장시켜 내 나라와 전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패해도 좌절할 수 없었다. 비전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 되든 안 되든 부딪쳐서 실패도 하고, 그 실패를 거치며 더 큰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 《브레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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