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동골 명상칼럼 6편] 몸의 언어 – 느낌

[천동골 명상칼럼 6편] 몸의 언어 – 느낌

사마천의 『사기』에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의 ‘사(士)는 위지기자사(爲知己者死)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 TV를 보면서 의아해 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항상 착한 주인공과 나쁜 악당이 나오는데 악당에게도 친구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왜 악당에게도 친구가 있는 것일까? 그 친구들은 악당이 나쁜 사람이란 걸 모르는 것일까? 등등 혼자서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렇게 궁금해 하던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른이 된 후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부분과 나쁜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과 친한 사람은 그 선한 부분을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신과 갈등을 겪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의 약점이나 나쁜 부분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드라마에서 악당으로 나오는 사람에게도 선한 부분을 인정하고 원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것은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육체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감각이 없는 물체’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몸둥아리’라는 말이 그것을 표현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몸에는 지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육체지능’이라 부르는데 영어로는 ‘Physical Intelligence’ 라고 합니다. 몸 스스로가 상황을 판단을 하고 그것에 반응을 하는 지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말입니다.

육체지능을 가진 우리의 몸이 사용하는 언어는 ‘느낌’입니다. 몸은 무언가 잘못 되었으면 통증이나 불편함의 느낌을 보냅니다. 모든 것이 정상일 때는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몸은 느낌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몸의 느낌에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일수록 몸의 감각이 살아납니다. 감각이 살아날수록 몸은 더욱 건강한 상태로 만들어 집니다. 이것은 ‘심생기(心生氣)’의 원리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느낌에 마음을 줄 때 그곳에 기운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의 느낌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 내 마음은 몸 안에 머물게 되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상태인 ‘Mindfulness’의 상태로 만들어 집니다.

우리가 보통 몸에 관심을 가질 때는 몸이 아플 때입니다. 몸이 통증을 통해 신호를 보내야 그제서야 관심을 가지고 몸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심각하게 큰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때도 많습니다. 몸의 신호이자 의사 표현인 ‘느낌’을 무시하게 되면 몸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몸은 관심과 기운을 받지 못하여 문제를 더 키우게 됩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그리고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 육체지능을 깨워야 합니다. 그 감각이 죽어갈수록 우리의 건강도 나빠지고 의식도 어두워지기 쉽습니다. 몸의 감각을 깨울 때 마음의 감각 즉 양심도 깨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육체지능을 꼭 깨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육체지능을 깨워 건강과 양심을 회복하는 시작은 몸의 언어인 ‘느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느낌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평화로워져 깊은 명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몸의 느낌에 집중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오보화 운영실장 / 천동골 명상단식원 http://chundonggol.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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