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균형 있는 양 날개를 가진 정치가 건강한 정치라고 한다. 인구에서의 남녀 비율이 1.1:1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자연적인 선택인 것처럼 진보와 보수의 비율이 각각 30%이고, 중도가 40% 정도로 유지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기와 전쟁 등을 경험하면서, 진보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시기를 수십 년 겪은 탓에 그 비율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못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책임감 없는 정치인들에 의해 권력게임에 이용당하면서 점점 더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이러한 감정적인 대립은 ‘국민 홧병’의 원인이 되어 애꿎은 연예인을 그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한 개인의 정치성향이 되는 것일까? 이제까지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보통 부모, 교육, 민족, 문화, 성별, 작업, 소득과 같은 사회요인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리고 이 같은 판단은 사회학자의 전통적인 영역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유전학, 뇌과학 등의 분야에서 진보주의와 보수주의가 어떻게 개개인의 정치성향을 형성하는지를 규명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진보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은 뇌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진보와 보수는 뇌구조가 다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의 료타 카나이 교수는 정치적인 태도와 관점 차이 등이 뇌구조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30대의 성인 90명을 대상으로 정치적 태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했다.
설문결과,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자유주의적 좌파라고 밝힌 사람들은 뇌 전두엽 한가운데 있는 전대상회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전대상회피질은 습관적인 반응이 아닌 새로운 반응을 해야 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우측 편도체(amygdala)가 더 컸는데 이곳은 공포와 혐오에 관여한다. 연구진은 “정치적인 관점은 진보와 보수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하게 존재하며, 정치적 관점이 다르면 뇌구조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주의자의 편도체가 더 크다는 결과와 일치하는 심리학 실험도 있다. 미국 코넬대학 심리학과의 데이비드 피사로 교수는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 정치학과 교수들과 함께 성인 181명과 코넬대학 학생 91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정치적 성향과 혐오스러운 물질에 대한 반응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혐오스러운 물질에 대한 반응이 강할수록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피사로 교수는 이런 연관성에 대해 “진보주의자는 혐오스러운 대상이 있어도 자신에게 실제로 피해를 주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 비해, 보수주의자일수록 혐오스런 대상을 도덕적으로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혐오감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발달한 감정이지 도덕적 판단을 내리라고 발달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며, 도덕적 판단에 혐오감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안다면 이 둘을 혼동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도 다르다?
유전자가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 캠퍼스(UCSD) 제임스 포울러 교수팀과 하버드대학 공동연구팀은 2천 명의 청소년 유전자 정보와 그들의 정치성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DRD4-7R이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10대부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DRD4는 도파민을 조절하는 유전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중 7R라는 대립형질은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행동과 연관되어 있다.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로서 움직임을 준비하거나 즐거움을 통한 동기부여 등에 관여한다. 포울러 교수는 “DRD4-7R이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으며, 이런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현재 상황을 지속하고 싶어하는 보수주의보다 진보주의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특정한 유전자를 보유한다는 것과 새로운 것을 원하는 행동이 합쳐지면 진보적 정치성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정치성향 결정에 유전적 요인이 관여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밝혔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행동들
이제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감정적인 정서를 넘어 ‘혐오감을 주는 물질’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의 실험을 통해 자신의 성향을 판단할 실마리를 찾아보자.
외부자극에 무덤덤한 편인가 아니면 민감한가?
미국 네브라스카 링컨대학의 심리학자 마이클 도드 박사팀은 일반인 72명을 대상으로 눈동자 반응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하얀 컴퓨터 화면에 작은 검은 점이 움직이다가 정중앙에 오면 키보드를 누르게 했다.
그리고 화면 이곳저곳에 사람 얼굴을 아주 짧은 시간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게 하면서 이들 이미지를 좇는 눈동자의 반응을 살피고 이들의 정치성향도 물었다. 그 결과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은 눈동자의 반응속도가 느렸고,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은 반응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원래 외부자극에 예민하지 않고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무덤덤한 편인데, 눈동자의 반응도 이런 성향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외부자극에 민감하고 눈동자의 반응속도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정치성향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에 차이가 있는데, 세상을 보는 눈의 반응속도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질서를 잘 지키고 예의 바른가? 감성적이고 동정심이 높은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조단 피터슨 교수팀은 실험 대상자 6백 명의 정치성향을 개별적으로 파악한 다음 성격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리고 정치성향과 성격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분석결과, 질서를 잘 지키고 덜 개방적이며 예의 바른 사람은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동정심과 평등의식이 높은 사람은 진보적인 성향을 띠었다.
피터슨 교수는 “이번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인 성향과 정당 선호도는 이슈에 대해 이성적으로 따져본 뒤 정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덕성, 정치적 가치 등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미리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질서를 잘 지키는 한편 동정심이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중립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보수와 진보 그리고 중도는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점심시간에 어떤 사람은 새로 오픈한 음식점으로 가고 싶어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늘 가던 밥집으로 가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단골 밥집만 찾는 사람도 애인과 함께 갈 음식점은 색다른 곳으로 정하려 할 것이다.
유전자의 차이나 뇌구조의 차이로 인해 변화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르다’는 말을 ‘틀리다’로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여간해서 고쳐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실험결과는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상식이 설득력을 얻게 한다.
글·강윤정 chiw55@brainmedia.co.kr